선거철에 끊긴 세밑 온정(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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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거리의 구세군 자선 냄비가 썰렁하다. 고아원·양로원의 어린이와 노인네들이 어느해 보다도 추운 겨울을 날 것 같다. 신문을 보면,유세장엘 나가보면 온통 세상이 돈다발로 흥청이는 것 같고 무엇이든 이뤄줄 것을 외치는 메시아 정치가들의 목소리가 드높건만 고아원·재활원·양로원엔 찬 바람만 불고 있다는 소식이다.
투표권이 없는 고아원엔 선거철이 돌아온다 해서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날리 없다. 투표권이 있다한들 호별방문과 기부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 선거법으로는 양로원이라고 달라질게 없다.
오히려 선거철이기 때문에 그나마 찾아오던 단체와 정당인들의 발길마저 끊기니 세밑 불우이웃들의 겨울은 더욱 차갑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경제건설과 복지사회를 이룩하겠다는 정치가들의 목소리가 담밖에서는 요란하고도 현란하게 펼쳐지고 있건만 담장안의 어린이와 노인네들은 이웃의 따뜻한 손길이 그리울 뿐이다.
해마다 우리는 세밑 온정이 그리운 불우이웃을 돕자는 캠페인을 하고 성금을 모으는 일을 벌이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허울일뿐 참다운 의미의 이웃돕기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그나마 방송사와 사회단체가 캠페인을 펼치고 정당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자발적인 불우이웃돕기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남의 불행을 자신의 불행으로 생각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체와 조직이 움직이지 않고 성금 캠페인 바람이 일지 않는다면 불행한 이웃마저 도울 생각을 우리 스스로 하지 않고 있는게 민주화와 시민사회를 요구하고 있는 우리들의 허위에 찬 모습이 아닌가.
불행한 우리의 이웃에 얼마만한 관심을 쏟고있느냐에 따라 진정한 의미의 시민사회는 결정된다. 누구나 늙고 병들면 양로원에서 외롭고도 어려운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는 평범하고도 당연한 이치를 우리는 외면하고 있다. 누구나 뜻밖의 사고로 부상을 당하고 생활의 방편을 잃게 될 위험을 복잡한 도시생활에서는 안고 있지만 우리는 애써 이 현실를 외면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내 부모,내 자식만을 감싸고 벽을 쌓아간다면 불의의 사고와 뜻밖의 재난으로 일어난 나의 불행을 누가 돌보고 위로해줄 것인가. 나의 성만을 쌓고 내 집 창문안의 따사로움만 생각하면서 창밖에서 울고있는 불행한 이웃을 생각지 않는 사회란 정의로운 민주사회가 아니다.
불행한 이웃을 돕는게 사회단체만의 일이 아니고 정치가의 일만이 아니다. 내가 내민 따뜻한 손길,나의 성금 한푼이 불행한 이웃에 웃음을 주고 희망을 준다는 인식의 출발에서부터 진정한 민주복지 사회의 기반이 구축된다고 본다. 자,이번 주말 우리 모두 가족과 함께 불우한 이웃을 찾아 한번 나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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