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하려면 간부들만 해라" 현대차 조합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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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전체 조합원 찬반 투표도 거치지 않고 파업을 결정했나."(현대차 노조원)

"의사를 묻지 않은 것은 잘못됐다. 죄송하다."(금속노조 간부)

금속노조가 현대차노조 조합원들의 반발을 외면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총파업을 무리하게 강행하려는 게 확인됐다. 20일 현대차노조 6대 현장 조직 중 하나인 '실천노동자회' 홈페이지에 조합원이 올린 금속노조 중앙 간부들과 현장 조합원 간의 간담회 대화록에서다.

대화록에 따르면 금속노조 간부들은 18~19일 현대차 울산공장을 방문, 여러차례 현대차노조 대의원.조합원들과 간담회를 했다. 간담회 분위기는 싸늘했다. 이 자리에서 조합원들은 "우리 피해는 어떡할 거냐. 총파업을 철회하거나 간부만의 파업으로 수위를 낮춰 달라"며 항의를 쏟아냈다.

하지만 금속노조 측은 "조합원의 희생이 따르지만 파업을 한다"며 강경했다. 금속노조가 조합원들의 뜻을 외면하자 일부 조합원은 불만을 품고 간담회장 밖으로 뛰쳐나가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원들이 "친구조차도 파업 때문에 현대차를 사지 않는다. 고객이 외면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따지자 금속노조 간부는 묵묵부답했다. 일부 간부는 "파업 반대 여론이 높아 혼란스럽다. 중앙위를 대표해 사과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다음은 금속노조 간부와 현대차 조합원 간의 대화록.

<19일 현대차 A공장>

-조합원:조합원 의견을 전혀 듣지 않는가. 지금은 현장 대의원들도 파업하자고 말 안 한다.

▶금속노조 간부:파업이 철회되면 조직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된다.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 파업에 힘 있게 동참해 주기 바란다.

-조합원:규약과 규정이 있는데 왜 총회도 거치지 않고 파업을 하는가. 부결을 우려해 그런 것 아닌가.

▶간부: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한.미 FTA는 불평등하다. 도와 달라. 절차를 무시한 것은 미안하다.

<18일 현대차 B공장>

-조합원:파업하는 이유가 뭐냐. 정치파업 했을 때 대안이 있느냐. 조합원들에게 돌아오는 피해는 어떻게 할 거냐.

▶금속노조 간부:….

-조합원:왜 조합원 투표 없이 파업을 진행하느냐. 조합의 주인인 조합원이 싫다고 했는데 파업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나중에 파업하고 나서 뭐가 남느냐.

▶간부:….

-조합원:현대차 조합원을 희생시키지 말고 간부 파업을 하면 되지 않느냐. 조합원을 왜 볼모로 삼나.

▶간부:….

-조합원:파업 찬반 투표에 부쳐라. 조합원들에게 무조건 이해해 달라고 하지 말고 금속노조부터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니냐.

▶간부:….

-조합원:조합원의 여론이 좋지 않으니 파업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나.

▶간부:조합원들의 희생이 따르지만 파업을 한다. 하지만 파업 반대 여론이 많아 중앙위도 혼란스럽다. 중앙위를 대표해 사과한다.

<18일 현대차 C공장>

-조합원:반대가 이렇게 많은데도 그냥 파업을 이끌고 가는 것은 잘못됐다.

▶간부:간부들 왜 뽑나. 조합원들이 뽑은 대표자가 결정한 것이다. 우리가 되도록 잘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다.

-조합원:이번 파업으로 현대차는 망할 수도 있는데 누가 책임지나.

▶^간부:현대차가 망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조합원:지금까지 너무 많은 정치파업을 했다. 모임에 나가면 욕먹는다. 파업하려면 간부만 파업하는 게 좋겠다.

▶간부:결정된 사항을 해보지도 않고 번복하는 것은 조직에 악영향을 미친다.

울산=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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