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완전-부분 허용 찬성"78.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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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우리 사회의 인간성 상실과 생명 경시 풍조가 매우 심각하다는데 공감하고 있으며, 90%가까이가 최근 들어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생명 경시 풍조의 원인에 대해서는 「물질 만능을 부추기는 체제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서강대 부설 생명 문화 연구소(소장 정의채 신부)가 서울·대구·광주·대전·춘천 등 전국 5개 도시와 인근 농촌 지역 주민 1천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생명에 대한 사회 의식 조사」결과 밝혀진 것이다.
가톨릭 주교 회의가 허용 반대 1백만인 서명 운동에 나서는 등 사회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낙태 문제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78.6%가 완전 혹은 부분 허용에 찬성한다고 답했으며, 찬성 이유로는 「이런 문제는 개인 의사에 맡겨져야 하기 때문에」(23.5%), 「산모의 건강이 심각하게 염려될 때」(19.9%), 「강간 임신인 경우」(12.7%), 「가족 계획상」(12.3%), 「미혼모인 경우」(12.1%), 「태아가 장애아이거나 정신박약아 일 때」(10.2%)등을 들었다.
사람의 생명이 언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물음엔 응답자의 84%가 「임신(수태)됐을 때부터」라고 대답해 생명 이해의 문제에 매우 적극적인 인식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 낙태 방지법의 효과에 대한 응답자들의 인식은 부정적이어서 84.4%가 「효과가 없다」고 답했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는 법률적 제재(10%)보다 교육적 방법(88%)을 주장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안락사의 법적 허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는 물음엔 18.4%가 「완전 허용해야 한다」, 62.7%가 「부분 허용해야 한다」, 18.9%가 「허용해선 안된다」고 대답했다.
최근 서울대에서 판정 기준을 내놓아 사회적으로 크게 관심을 모은 「뇌사」의 법적 허용에 대한 태도를 묻는 문항에는 72.2%가 「완전 허용해야 한다」, 12.7%가 「부분 허용해야 한다」고 대답, 뇌사 인정에 대한 여론의 수용 정도가 상당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뇌사 찬성의 이유로 응답자들은 「장기 이식수술로 보다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으므로」(47.8%),「막대한 의료비용 때문에」(34.4%), 「기타」(17.8%)등을 들었다.
사형 제도에 대해서는 82% 이상이 「존속돼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고, 대체로 「법질서 확립」(33.4%), 「범죄 발생률 감소」(20.2%), 「흉악범 응징의 필요」(46.1%)등의 이유가 이 같은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대답이 48.8%로 가장 많았으나「개인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식의 사회구조적 책임을 중시하는 견해도 38.8%나 됐다. 특히 응답자의 절반 이상(52.4%)이 한때 자살을 고려한 경험이 있으며 이러한 경험은 남자보다 여자, 나이든 사람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훨씬 많았던 것으로 드러나 주목된다.
환경 파괴의 심각성에 대해 응답자들은 대체로 공감을 표시하고 있었으나 개인보다는 체제·국가 정책 등의 사회 구조적 요인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했다.
한편 응답자들은 우리 사회의 생명 경시 풍조에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생명 운동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심을 갖는 편」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40.8%에 지나지 않았고, 생명 운동에 대한 교육을 받은 사람도 4.2%에 불과해 실전이 제대로 따르지 않고 있음을 보여줬다. 생명 문화 연구소는 이번 「생명 의식 조사」결과를 토대로 9일 오후2시 서강대 본관 교수 회의실에서 관련 학자·전문인들을 초청, 논평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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