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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한류 스타' 최승희가 연예계에 주는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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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한류 스타, 최승희에게 우리 연예계가 배워야 할 것

조선이 낳은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1911~1969)가 70여년 전 대만에서 조선 붐을 일으킨 원조 한류 스타였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최승희와 최근 한류를 주도하는 연예계의 차이점도 부각되고 있다. 최근 '세계일보'는 25일에 발간될 아시아 문화비평지 '플랫폼' 7.8월호의 기고문을 인용해, 최승희가 1936년 대만 공연을 기점으로 조선 붐을 불러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이 해 7월3일 최승희의 대만 공연은 워낙 성공적이어서 이틀간 연장하기도 했다. 기고문에서 대만국립정치대 장윈쉰 교수는 "(최승희가) 같은 처지인 대만인에게 동정 어린 비판을 아끼지 않았고 동지적 연대감을 느꼈다"고 썼다.

당시 조선과는 전혀 교류가 없었던 대만이지만, 최승희가 대만인들에게 일제의 압제 하에 놓인 지역이라는 공감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는 지적이다. 반면 오늘날의 한류는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음악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진정한 아시아인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당시 대만에서 불었던 한류 열풍은 지식인 사회 중심이었다는 것도 큰 차이다. 현재의 한류는 대중문화의 핵심 소비 계층인 10대와 20대 초반의 여성이 중심이다. 대만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최승희로 상징되는 조선에 열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최승희가 민족 문화와 전통을 말살하려는 일본의 동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조선식 무용을 중심으로 서양 무용의 형식을 융합한 점 때문이었다. 기고문에 따르면, 최승희에 이어 손기정이라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를 배출하자 대만 식자들의 조선을 본받자는 움직임은 크게 확산됐다.

마지막으로 식민지 출신의 글로벌 스타 최승희의 세계 무대 진출 경위도 현재의 한류 확산 경로와는 다르다. 일본 무용가 이시이 바쿠에게 사사하면서 일본 공연이 호평을 얻게 되자, 그는 즉각 미국으로 향했다. 1937년 미국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그가 뉴욕 공연을 감행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조선 붐을 일으킨 대만 공연은 그 직전에 가진 것이었다. 그 후 유럽과 중남미 공연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정작 중국이나 일본 공연을 가진 것은 그 후의 일이다. 현재의 한류가 주로 중국과 일본에서 불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최승희는 세계 문화의 중심지를 겨냥했다는 점이 다르다. 한 마디로 70여년 전의 이른바 원조 한류는, 더 대담하고 고급스러웠으며, 설득력이 있었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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