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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유 없었던 YS 광주연설/김원태 전남대신방과교수(유세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안녕하십니까.
나는 3일 오후 2시 광주공원 유세장에 귀하를 만나러 갔습니다.
귀하는 지난 대선 이후 실로 오랜만에 광주시민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지난달 28일 국민당 정주영후보의 같은 광주공원 유세에서는 청중들이 「김대중」을 연호하고 집에 가라는 등의 저속한 야유를 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며 같은시간 유세장에서 5백여미터 떨어진 광주 태평극장 앞길에서 대학생 시위대가 유세장에 접근하려다 경찰에 의해 저지된 사실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날 귀하의 유세장에는 얼마나 많은 청중이 모이느냐 하는 것과 불상사가 일어나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 것이 큰 관심사였습니다.
그런데 이날 광주공원은 발디딜틈 없이 많은 청중들로 붐볐습니다.
예상치 못한 많은 청중들이 무엇 때문에 귀하의 연설회에 모여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귀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광주에 이처럼 갑자기 많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청중들은 귀하를 지지해서라기 보다 귀하의 얼굴을 실제로 보기 위해,또는 귀하가 어떤 인물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연설 대목마다 터진 박수소리는 당원들과 녹음된 소리였으며 대부분의 청중들은 차분히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청중들의 반응도 가지가지였습니다.
어떤 70대 할아버지는 『아무래도 저 양반이 대통령이 될성 싶은데 잉,얼굴이나 한번 봐볼라고 왔지라우』
대학생인듯한 청년은 『솔직히 맘에 안드는 사람입니다. 5년 전에 후보단일화도 안했고 또 마산에서 「광주사람을 부끄럽게 해줍시다」라고 한 사람 아닙니까. 그리고 3당통합으로 변심한 사람이구요』
『나가 정치는 몰라라. 그깐디 가수랑 코미디안들이 나온대서 귀경왔당께』 장사를 한다는 50대 아주머니의 말이었습니다.
귀하가 연설한 32분동안 걱정하던 불상사는 커녕 단 한번의 야유도,소란도 없이 연설이 끝났습니다. 귀하는 왜 아무런 일 없이 유세가 끝났다고 보십니까.
남총련은 2일 오전 전남대에서 귀하의 광주유세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유세는 14대 대통령선거의 공명분위기를 확산시키는 중요한 시험대라며 유세에 참석하는 시민들에게 야유나 소란 등 지역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일체의 행동을 자제해줄 것을 촉구한바 있습니다.
민주당은 「김영삼후보가 야유를 받거나 87년 대선때와 같은 폭력사태가 발생한다면 이는 지역감정을 또 다시 자극,민주당에 결정적 불이익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면서 3백명의 정예 당원들을 유세장에 배치해 대비시켰습니다.
공명선거를 바라는 국민의 정치의식이 성숙해진 이때 이땅에서 유세장 폭력은 사라져야 하고 또 사라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귀하는 무등산의 무등이라는 말은 격차가 없다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빈부간·계층간·지역간·학력간·남녀간 차이가 없어야 한다고 한 말은 설득력이 있었고,귀하의 말을 수화로 통역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중모음 발음이 불완전 했습니다.
「광주」가 「강주」로,「공명」이 「공맹」으로,「관권」이 「간건」으로 발음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제」는 모두 제대로 발음되었습니다.
귀하는 망월동에 누워있는 아들 딸과 형제 자매들의 고귀한 민주혼에 머리를 숙인다고 했습니다.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암울했던 시기에 귀하가 던진 이 말 한마디는 민주인사들로 하여금 민주제단에 기꺼이 몸을 바치게 했습니다.
울음소리 한번 제대로 못내고 숨져간 수 많은 「광주 닭」들 덕분에 이 땅에 민주주의의 새벽은 밝아왔습니다.
광주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나는 귀하가 대선의 승패에 관계 없이 수 많은 「광주 닭」의 희생을 딛고 새벽을 맞이한 사람의 하나임을 잊지말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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