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혁 때 빼앗긴 한국인 교회 돌려달라"|84년 영주 귀국 이은영 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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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상해한국기독교회는 독립운동가 등의 헌금으로 사들인 우리 소유의 교회인 만큼 꼭 되찾아야 합니다. 중국으로 망명한 애국지사와 교포들이 이국생활의 외로움을 이 교회에 모여 달래곤 했습니다.』무장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떨친 고 임득산 열사의 미망인으로 지난 84년 중국에서 영구 귀국한 이은영 여사(86·경기 광명시 하안동)는 『교회 문서 일체를 온전히 보관하고 있다』며 『중국대표부 등을 통해 반환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이 여사 일가를 비롯, 도산 안창호·주요한 선생 등 당시 상해거주 2백여명의 교포들이 모금한 돈 5만원으로 홍구 지역의 진춘생이라는 중국인 소유 2층짜리 적벽돌 건물을 사들인 것은 지난 1940년.
교포들은 4백평 가량(2무)의 대지 위에 세워진 이 건물을 개·보수해 1941년 상해조선인 기독교회라는 간판을 달고 1층은 교포자녀의 교육을 위해 학교로, 2층은 예배당으로 썼다.
『잘 운영되던 교회는 문화혁명의 소용돌이에 말려 60년대 말 완전히 문을 닫았지요. 형식상으로는 당시 건물 일부를 관리하던 좌익계열의 조선인협회가 상해교육국에 접수시켰던 것입니다.』 이 여사는 이 과정에서 좌익계열 등으로부터 적지 않은 위협을 당했다고 말했다. 『집문서·땅문서를 내놓으라는 회유와 협박이 잇따랐습니다. 어떻게 장만한 교회인데 넘겨줄 수 있겠습니까. 문서를 집안 깊숙이 감춰놓고 끝내 버텼습니다.』
상해 지정국에 등기된 당시 교회문서의 우리측 계약자는 고 방효원 목사(현 영등포교회 방지일 목사의 부친)로 방 목사 사후 이 문서는 장로(허상련씨)의 손을 거쳐 이 여사에게 넘어 왔다. 이 여사는 현재 총 50여쪽의 교회부지 관련 문서 일체와 계약 당시 사용했던 도장 등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
『건물을 되찾아 독립운동기념관이나 교회로 썼으면 합니다. 당시 어려운 생활 속에서 동포들이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마련한 땅이요, 교회인데 이대로 두고 죽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아들 임수봉씨(62)·친손녀 춘화씨(25·연세대 중문과)와 함께 오촌숙 부인 이용설씨(전 세브란스 병원장)의 주선으로 귀국한 이 여사는 월 45만원의 독립유공자 연금과 친지 등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
남편 임 열사는 의열단원으로 폭탄제조가 전문이었으며 43년 홍콩에서 이 여사와 함께 일경에 체포된 후 그 해 중국 광주감옥에서 옥사했다.<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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