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선만 야기한 금리논쟁(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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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는 현재와 같은 고금리수준에서 산업의 경쟁력이 조금도 나아질 수 없으며,따라서 여건만 조성되면 통화당국이 금리체계를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그러나 재무부에 의해 주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재할금리인하로는 실세금리의 하락을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한국은행조차 당장의 금리인하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이유를 들어 정부방침에 제동을 걸고 있다. 중앙은행의 이같은 분명한 입장표명은 재무부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는 부정적 측면보다 금융제도의 중심적 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긍정적인 면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금리를 포함한 금융정책에서 정부의 독주나 중앙은행의 경기대책에 대한 지나친 보수성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두 기관이 서로 견제하며 거시경제의 틀을 바로 잡기 위해 호흡을 맞춰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최근 재무부가 일방적으로 금리인하론을 강도높게 내세우거나 금리자유화 및 금융산업 개편방안 등을 계속 들이밀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는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고 있는데 대해 우리는 적지않은 우려를 가지고 있다.
이미 3·4분기 국민총생산에서 밝혀졌듯 산업의 경쟁력은 크게 약화되어 있으며 그 주요 원인은 고금리와 기술개발 지연,근로의욕 상실,그리고 임금상승에 있다. 업계는 무엇보다 금리가 떨어지지 않고서는 경쟁력 회복이란 도대체 기대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 각당의 대통령후보들도 이같은 의견을 받아들여 당장이라도 금리를 인하해줄 것 같은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정부가 경제동향을 제대로 읽지 않고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들의 무사려한 언동에 영향을 받거나,또는 이를 간접적으로 지원하는듯한 정책구상을 지금 이 시기에 밝히는 것은 성급한 일이 될 것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5%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경기는 하강세를 타고 있다. 정부가 경기 부양책으로 금리를 인위적으로 인하한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기업이 부담하는 금융비용이 줄어들 상황인가에 대해서는 업계에서 조차 폭넓은 수긍을 얻지 못하고 있다. 꺾기 등 강제저축은 여전한데 실세금리가 명목금리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 우선은 재할인금리 인하의 효과가 미미하고 통화를 더 풀었다가는 선거시기와 맞물려 물가안정을 희생해야 하는 위험이 따른다.
설비투자를 촉진시킬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가 안정되고 통화와 임금 등을 포함한 종합경제정책에 대한 관계당국간의 의견조정을 서두르는게 중요하다. 안정성장을 지향하는 산업구조조정 차원에서 실효있는 금리인하정책이 추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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