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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낮춘 사법부 홍보/남정호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서울형사지법에서 보기드문 일이 일어났다.
이 법원 공보관인 이영범수석부장판사가 30일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자청,보석금을 1천만원대로 「현실화」한다는 법원방침을 밝힌 것이다.
이 부장판사는 이와 함께 보석금의 1%만 내면 보석금을 대신하는 보석보증보험증권의 이용을 국민에게 적극 홍보해 달라고 기자들에게 당부,눈길을 끌었다.
지극히 당연해야할 법원 공보관의 브리핑이 법원출입기자에게 생소하고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동안 법원이 대국민홍보에 워낙이 인색했기 때문이다.
『국민위에 군림하는 법원이 아닌 봉사하는 법원을 만들겠다』는 것이 90년 취임한 김덕주대법원장의 일성이었으나 실제에서 법원은 국민과의 언로에 무거운 빗장을 걸어놓고 반드시 알려야할 사항도 소극적으로 처리해왔다. 마치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원칙만을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듯한 자세였다.
올들어 대한변협의 법조부조리 폭로 등을 계기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고조된 것도 법원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국민들의 사법부 무지에 상당부분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법원의 홍보부족은 결국 「야간법원제」,「보석보증보험증권제」 등 의욕적으로 도입한 새로운 사법제도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유명무실해지는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
새로운 법률과 사법제도가 국민생활에 부드럽게 녹아들어가 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법원도 국민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기능을 중시,홍보에 적극성을 보여야 옳다.
격변하는 세계화시대에 발맞추기에 바쁜 사법부도 그때그때 적절한 제도도입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며 국민들의 생활에 직결된 혁신적인 판결이 나왔다면 이를 국민에게 알려야할 당위성도 충분하다.
높은 법대에 올라앉아 준엄한 판결만을 낭독해 왔던 과거에서 탈피해 「인자한 얼굴」로 국민에게 어려운 법을 가르쳐야할 사명도 사법부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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