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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새해엔 나와 함께 이웃도 돌아봅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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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003년 한해가 저물고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한해를 되돌아보면 아쉬움과 미련이 한아름이다.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출발은 희망과 함께 시작되는 법. 건강하고 행복한 새해를 꿈꾸는 이 때, 여성들의 소망을 들어봤다.

*** 이수풀(48·숲해설가)

느티나무처럼 주위 맑게 하는 향기 지녔으면

부끄럽게도 나는 그동안 자신의 일에만 너무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느티나무는 잔뿌리와 잔가지, 잎사귀와 꽃, 둥치에 골고루 양분을 배분함으로써 튼튼하고 오래 사는 나무입니다. 이런 느티나무를 닮아 내 가족은 물론 아파트나 지하철에서 스치는 이웃들에게까지 나무와 같은 싱싱한 에너지를 나누어주고 싶습니다.

먼저 머리숱이 성글어가는 남편의 머리를 빗어주는 엄마 같은 아내로, 청년 실업 문제를 뚫고 지나가야 할 대학생 아들에게 우스갯소리로 편안하게 위로하는 친구로, 이제 머지않아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될 딸에게는 귀기울여 들어주는 살가운 언니로, 쇠약한 부모님에게는 세월의 바람을 막아주는 방파제 같은 딸로 서 있으려 합니다.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처럼 우리 모두가 혼자 있을 때에도 행복하고, 여럿이 있을 때에도 더불어 풍요로운 숲을 이뤘으면 합니다.

기상이변 없는 날씨 속에서 농사는 풍년이 들고 청계천 복원 공사도 잘 마무리돼 푸른 서울을 이루었으면 합니다. 학교마다 나무들이 우거져 아이들이 푸른 희망의 꽃을 피우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동받고 서로의 경이로움에 감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우리의 마음이 더욱 가난하고 향기로운 나무를 닮기를 새해 새 날에 소망해 봅니다.

*** 이은주(37·주부)

봉사로 이웃 보듬고 나만의 시간도 갖고파

두달 전, 은행에서 빌린 돈을 다 갚았습니다. 이사하면서 덜컥 큰 빚을 지고는 언제 다 갚을까 걱정했는데 3년이 되기 전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넘치는 쓰레기 봉투에 테이프를 붙이는 나에게 핀잔을 주면서도 그 억척에 따라준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내년에는 시부모님께 용돈을 조금 더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해엔 양가 부모님께 자주 안부 여쭙고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새해엔 자원봉사 활동을 좀더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합니다. 지난 1년 동안 봉사 활동을 통해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귀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상담자원봉사와 한달에 한번 하는 노력봉사,그리고 후원활동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해 나와 내 주위가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주인공이 시한부 삶을 사는 드라마를 보면서 행복한 가정을 지키는 최우선의 초점을 '나'로 맞춰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년엔 몸과 정신이 더 건강한 엄마가 돼야겠습니다. 미뤘던 건강검진도 받고 나를 위한 시간과 공간을 만들 참입니다. 식탁 한 공간이든 아니면 밥상 하나를 펴서라도 내 공간을 만들고 규칙적인 운동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새해 아침 떡국 상을 마주하고 앉아 가족에게 나의 올해 소망을 발표해야겠습니다. "올해는 나이 40을 준비하는 나를 위한 해가 되도록 하겠다"고.

*** 이유진(21·이화여대 중문과 2학년)

취업 강박감 털고 잃어버린 꿈 다시 꾸게…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습니다. "꼭 이루고 싶은 꿈을 이뤄주겠다"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기분이 들떠 열심히 생각해봤습니다. 내 꿈은요…그러니까 내 꿈은 말이죠…. 그런데 도대체 내 꿈이 뭔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고백컨대 지난 1년 동안 꿈을 꾼 적이 없습니다. 2003년은 꿈을 잃어버린 해였습니다. 몇 해 전만 해도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꿈을 잃었을까. 굳이 이유를 찾자면 갓 입학한 후배마저 "언니는 취업준비를 어떻게 하세요?"라며 불안감을 내비쳤을 때와 같은, 그런 유의 각박함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엉뚱한 꿈과 새로운 경험으로 하루가 벅찼던 내게 그런 지독한 각박함은 부담이었습니다. 겁이 난 나머지 어리석게도 '이제 꿈을 꿀 나이가 아니구나'하고 오해했고 꿈꿀 권리를 포기해 버리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제 다시 생각해 봅니다. 진한 화장이 어색한 만큼이나 꿈을 잃어버린 모습 또한 아직은 내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꿈만' 꿀 나이가 아닌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 '꿈도' 꿔야 하는 나이입니다. 만약 정말로 꿈속에서 누군가가 나와서 2004년, 꼭 이루고 싶은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꿈꾸게 해주세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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