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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특수직 위협하는 '보호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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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200년 전만 해도 물건을 만드는 것은 분업으로 연결된 자영업자들이었다. 그러다 근대적 기업이 등장하면서 고용관계를 맺고 일하는 근로자 계층이 생겨났다. 이제 정보기술(IT) 혁명은 세상을 다시 바꿔놓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비용의 감소로 기업은 분화되고 분권화되고 있다. 나아가 일의 독립성이 커지고 고용계약이 업무위임 등의 서비스계약으로 바뀌면서 이제 다시 자영인, 혹은 1인 사업가가 많아지고 있다. 또 서비스 경제로의 구조변화에 따라 계약직.파견직 등 다양한 직업 형태가 생겨났다.

취업 형태의 다양화는 거역할 수 없는 추세다. 그러나 전통적인 고용관계가 있어야 먹고사는 집단에게 이 변화는 달갑지 않다. 조직 대상인 근로자가 자꾸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변화 자체를 거부하려 한다. 사업주와 근로자 간의 고용관계가 아닌 것을 갖고 '간접고용'이니 '특수고용'이니 하는 신조어를 만들어 은근히 고용관계인 것처럼 본질을 왜곡시킨다. 권력을 등에 업은 이들은 아예 법제도를 바꾸어 새로운 취업형태를 기존 고용관계의 틀 안으로 가두려고 한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노동법제는 이런 무지와 수구적 이기심의 희생양이 돼 왔다. 그래서 세계의 변화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파견법이 한 예이며, 7월부터 시행되는 계약직 2년 규제가 또 다른 예다. 그리고 며칠 전 노동부가 정부 내 반대를 피해 의원입법이라는 편법으로 국회에 제출한 '특수고용직 보호법안'은 그 결정판이다. 국회는 일단 이 법안을 6월 임시국회에 상정하지 않고, 공청회 등을 거쳐 가을 정기국회에서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이 법안은 '혼자서 일하면서 다른 사업, 혹은 사업장을 위해 상시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특수형태 근로자라고 정의하면서 자영인이라 하더라도 파업권을 제외한 노동2권 및 각종 개별적 노동권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이들 중 '일하는 시간.장소.내용을 사업주가 결정하고 직.간접적인 지휘감독을 받는 경우'에는 완벽한 노동3권을 주도록 하고 있다.

이 법안은 보험설계사.학습지교사.레미콘기사.캐디 등 이른바 을(乙)의 입장인 자영인들을 염두에 둔 법안이다. 하지만 정작 누가 대상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함으로써 가뜩이나 모호한 대상을 더욱 모호하게 하고 있다. 이 법대로라면 예컨대 수많은 각종 배달업자, 1인 프랜차이즈 사업자 등이 모두 해당될 수 있다. 더구나 이들 대부분은 일하는 시간.장소.내용 등에 대해 갑(甲)의 직.간접적인 지휘감독을 받으므로 노동3권을 가질 수 있다. 사업자 등록증을 갖고 사업소득세를 내면서 동시에 노동3권도 갖는 막강한 사장님 노조가 탄생하는 것이다. 화물연대는 노동권이 허락되지 않은 자영인 조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년 동안 불법 파업으로 막대한 피해를 주었음을 상기할 때 이 법이 통과되면 어떤 결과가 오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시대의 변화를 왜곡하는 제도는 오래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에 커다란 피해를 준다. 이미 비정규직법은 시행 이전부터 법 취지와 반대로 수많은 일자리를 없애고 있다. 특수형태 근로자법은 그 종사자 일자리를 많게는 35% 이상 없앨 것으로 추정된다. 외국인 투자는 더욱 줄어들 것이며 오히려 국내 기업의 해외 탈출을 부추길 것이다.

문제를 솔직하게 보자. 문제의 핵심은 요컨대 을의 입장에 있는 자영인을 보호하자는 게 아닌가. 그러려면 경제법을 이용해야지 노동법을 들이대선 곤란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다뤄야 할 일을 왜 노동위원회가 하려고 하는가.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특수형태 종사자 보호대책을 발표해 시행하고 있고 효과도 거두고 있다. 계약의 불공정성, 관행의 부적절함 등은 관련법 및 관계부처의 감독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 국회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