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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국산 차「시발」57년 첫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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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85년 국산「엑셀」승용차가 미국에 처음 수출됐을 때 이를 가장 반긴 사람들은 우리 교포들이었다. 시원하게 뚫린 미국의 프리웨이를 우리가 만든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잃어버린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색다른 맛도 있거니와 그동안「코리아」를 몰라주던 주변 사람들이『아하, 엑셀을 수출한 나라…』할 때는 저절로 어깨가 으쓱거리더란 것이다. 현재 세계에는 1백80여 개 나라가 있지만 이 가운데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는 21개국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자동차를 수출한다는 자체만 갖고 그 나라는 기술선진국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어느 나라 국민을 막론하고 자동차 수줄에 대해서는 남다른 자부심을 갖게 마련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1백49만8천대의 자동차를 생산, 이 가운데 39만대를 세계1백65개 나라에 수출했고 나머지 1백10여만 대는 국내에서 소비했다.
이처럼 자동차가 해마다 1백만 대 이상 쏟아지다 보니 소비자들도 과거에는『어느 차가 성능이 좋다 더 라』에서 이제는 『어느 차가 모양이 좋다 더 라』로 구매 동기가 점차 바뀌어 가고 있다.
자동차도 우리가 입는 옷처럼 패션제품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자동차산업이 이같은 수준에 이르기까지에는 40여 년의 짧은 기간 중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했다.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첫선을 보인 것은 지금부터 90년 전인 1903년 고종황제를 위해 수입한 미국의 포드 자동차였지만 자동차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6·25동란 직후였다. 지금은 명보극장이 들어서 있는 초동 일대에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천막이 쳐지고 그 속에서 자동차산업 1세대인 최무성·김창원·하동환씨 등 이 원시적인 방법으로 자동차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드럼통을 잘라 차체를 만들고 그 속에 미군 지프의 엔진을 얹은 자동차지만 그래도 비포장 좁은 길을 잘도 달렸다.
이들이 만든 차가 포드자동차와 흡사하다 해서 미국 본사에서 위조차 단속을 나왔지만 「망치 하나로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솜씨」에 놀라 혀를 내두르고 돌아갔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57년 최무성씨가 만든 국산 차 1호「시발」이 드디어 등장했다.
창경원에서 열린 산업박람회에는 대통령상을 받은 지프형 자동차「시발」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이후 시발택시를 타고 나들이 나서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61년 5·16직후「자동차공업발전 법」이 만들어지면서 국내 자동차산업은 차츰 원시형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4대 의혹사건의 하나인「새나라 자동차」파문이 가라앉고 업계가 김창원의 신진과 정주영의 현대로 교통정리가 되면서 SKD(세미 녹다운)생산방식이 도입됐다.
SKD는 엔진 등 주요부품을 뭉텅이로 수입해 단순 조립하는 방식으로 신진에서는 일제 코로나, 현대는 미제 코티나를 각각 생산했다.
그러나 국내 시장은 좁고 수출은 더욱이나 생각도 못하던 때, 자동차산업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었다. 게다가 신진은 일련의 정치사건에 휘말리면서 미국 GM사와 합작으로「새한 자동차」로 이름이 바뀐 뒤 결국 대우로 넘어갔으며 현대 역시 부도직전까지 몰리면서 국세 최고체납자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때 돌파구로 등장한 것이 국산 모델자동차 포니의 출현이다. 75년 현대가 이탈리아 디자이너의 도움으로 만든 포니는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15번째「자동차 생산국가」로 등재시킴과 동시에 내수시장을 폭발시키는 활력소가 됐다.
현대는 10년 뒤인 85년 전륜 구동형인 포니 엑셀을 개발, 미국을 비롯한 세계시장에 한국산 자동차를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사이 국내 업계는 현대를 정점으로 대우, 기아의 3각 체제를 구축, 치열한 각축전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업계는 90년대 들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차종은 3천cc급 대형차에서 경차 티코까지 차별화 됐으나 소비자들의 입맛은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
기술개발도 상당히 이루어져 가솔린용 국산엔진이 개발됐고 알콜·전기자동차, 시험용 무인자동차가 곧 실용화될 전망이나 선진국과는 아직도 기술격차가 심하다.
업체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 쌍룡이 독일 벤츠와 합작으로 승용차 시장에 참여할 예정이고 일부 대기업들도 자동차에 대단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그 동안의 40년보다 더욱 숨가쁜 시간을 맞이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오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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