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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도 쪼개쓰며 강행군… 3당후보의 24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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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영삼후보/토막잠 자며 하루 천㎞ 표밭갈이
『야당 투쟁경력을 너무 부각시키지 마십시오. 여기는 경북입니다.』
『오히려 안정논리에 호소하는게 낫겠습니다. 5·16쿠데타라는 표현도 재고하시죠.』
최창윤비서실장과 이해구사무부총장,이경재공보특보의 「잔소리」에 김영삼민자당후보는 묵묵히 듣고있다. 『알겠다­』. 대답은 단 한마디.
25일 오전 9시5분 경북 예산비행장 귀빈실과 낮 12시20분 안동으로 가는 유세용 버스안에서 벌어진 간이 참모회의 모습이다. 이 특보는 다시 『이번 유세지는 안동입니다』라고 주의를 환기시킨뒤 유세원고 맨위에 큼직하게 「안동」이라고 쓴다.
하루 1천㎞ 이상,8곳이나 되는 유세 또는 당원격려의 분단위 일정속에 혹시라도 후보가 실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 후보가 『내가 알아서 한다』는 반응이 나오지 않자 일행은 안도한다. 김 후보가 『알아서 한다』고 하면 참모의 충고는 묵살될 것이라는 점을 이들은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낮 12시30분 안동역광장­. 살구씨기름 10㏄를 마시고 연단에 오른 김 후보는 과연 『여러분,5·16을 기억하십니까. 다시는 이 땅에…』라며 「쿠데타」라는 말을 뺏다. 『국회의원의 3분의 1로,또는 10분의 1을 가진 정당이 집권하면 6공초보다 더한 혼란이 올 것』이라는 「안정속의 개혁」논리를 강조했다. 야당투쟁 경력은 『40년동안 정치해 오면서 땅한평 늘린 적 없으며…』고 「깨끗한 정치」로 대체했다.
군위에서 영천으로 이동도중 사과 재배농가를 방문하는 일정이 추가됐다고 측근들이 보고했다. 정책공약 담당인 한이헌경제보좌역은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에 대비,농촌구조 개선사업에 향후 10년간 42조원을 투입합니다. 과수농가의 절실한 희망사항은 보존시설 확충입니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는 농가에 들러 이런 약속을 하면서 사과 한개를 즉석에서 먹어 보고 『맛있다』고 말했다. 이날 일정중 「신한국인」1호 김덕균씨(33)와의 만남,신망애육원 방문 등은 모두 김무성정책보좌역과 4명의 PD로 구성된 이벤트팀이 간밤에 끼워넣은 프로그램이다.
오후 3시30분 영천역 광장에 도착했을때 21일 입당한 정호용의원이 찬조연사로 나와 있자 김 후보의 표정이 밝아진다. 불철주야 지구당 위원장을 독려하고 유세준비를 위해 뛰던 이상재유세위원장이 이날 새벽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하루종일 우울했던 김 후보였다.
단상에선 김 후보는 정 의원과 김윤환의원의 팔을 높이 들어 군중들의 환호에 답하며 꺼림칙한 기분을 삭였다.
김 후보는 이날 점촌에서는 구민주계의 신영국 전의원을,안동에서는 오경의 전의원을 거론했으며 군위에서는 김윤환의원을 『내가 모든 일을 상의하는 오른팔』이라고 치켜세웠다. 김 후보 나름의 용인술이다.
영천유세후 경산에 들러 당원들을 격려한뒤 대구공항에서 임시편 항공기로 서울에 도착한 김 후보는 오후 8시30분쯤 상도동 자택에 도착,26일자 조간과 저녁 9시뉴스를 본뒤 오후 10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에는 오후 11시 이후 취짐했지만 22일이나 남은 강행군을 고려해 체력을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숙면을 한 그는 오전 5시20분 기상,1시간 조깅,조간 및 오전 7시 뉴스시청을 빼놓지 않았다. 마산의 아버지 김홍조옹에게 『저 영샘입니더』로 시작되는 아침 문안인사도 빠뜨리지 않았다.
오전 7시30분 공항으로 출발하면서 카폰으로 교통사고를 당한 이상재의원의 경과를 묻고 유재흥 전국방부장관과 인사를 나누었다. 24일 서산유세에서 예상 외의 열기를 보인데 대해 이홍근 서산­당진위원장에게는 『고생 많았다』고 격려했다. 좌석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김두우기자>
◎김대중후보/「팩스신문」보면서 소매상식 유세
「김대중민주당후보」라는 감독겸 주역배우 뒤에는 여러명의 조감독이 달라붙어 DJ의 인상을 더욱 강렬하게 유권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안을 짜고있다.
25일 오전 5시30분 동교동 자택. 잠자리에서 일어난 김 후보는 이날 유세에 나서는 강원 동해안 7개 시·군에서 할 연설문에 무얼 더 담을까를 궁리하다 자신이 6·25때 공산당에 붙잡혀 처형직전 탈출했던 「체험적 반공론」을 넣기로 마음먹었다.
6시15분 도착한 전속이발사로부터 볼륨을 살짝 살리는 머리손질을 받는 사이 매무새 치장가 윤혜정씨(29)는 추운 바닷바람을 감안,검정 오버코트와 자주색 목도리에 포인트를 맞춰 김 후보가 입을 옷을 챙긴다.
이어 윤씨는 눈썹을 약간 살리면서 흐리게 양볼을 약간 죽이고 얼굴피부는 전체적으로 엷게 하는 화장을 한다. 그는 『나이 육십이 넘어 화장할 줄은 몰랐다』고 TV시대의 정치인상 가꾸기를 새삼 실감한다.
다음 임복진수행실장(2군부사령관 출신)이 들어와 『현지의 체감온도는 영하 5도 이하로 바람이 세다』고 경호협의겸 기상보고를 한다.
김 후보에 관한 TV모니터역에 열심인 부인 이희호여사는 「연설은 부드러움 속에서 뜨거움이」라는 주문을 덧붙인다.
소위 동교동 아침식단인 떡,삶은 고구마·과일·전복죽으로 식사를 한뒤 김 후보는 홍사덕대변인·박지원수석부대변인·이해찬기획실장·김옥두의원·배기선비서실차장 등과 이날 표밭공략 지역의 특성을 점검하고 유권자에게 내놓을 메시지에 대한 전략회의를 갖는다.
「이번만은 바꿔보자」는 정권교체의 호소강도를 높이면서 소득수준이 낮은 어촌경제권,접전지역임을 감안해 어민 관련공약과 안보문제를 강조하기로 하고 「카메라이벤트」는 속초 대포리 해안시장에서 새벽 고기잡이를 마친 어민들과의 만남으로 짰다. KAL기편으로 속초에 내려온 그는 먼저와 대기하고 있는 리무진버스에 옮겨 타고 순회유세에 들어갔다. 전날 와 현지 관심사를 확인한 정책현장 관리팀의 박익수과학특보가 첫 유세지인 거진에서 「원자력발전소 건설 반대」를 공약에 추가하도록 건의했다.
87년 2백명 청중을 모으기 힘들었던 속초수복탑 옆 유세장­. 이날 오전 11시20분 매서운 바닷바람 속에서도 1천명 이상이 모이자 그는 힘이 솟는듯 열변을 토했다.
『미국은 12년도 길다고 바꾸는데 한 세력이 32년동안 집권했으면 우리도 이젠 바꿀때가 되지 않았느냐』면서 그는 『나는 40년간 집에서나 감옥,망명시절에도 국정을 맡을 준비를 하루도 소홀히 한적이 없다』고 자질론을 제기했다.
한정식 집에서 갈비탕으로 점심을 때운 그는 오후 2시 주문진 유세장으로 가면서 버스에 설치된 팩스로 서울에서 보내준 석간기사를 읽었다. 버스에서 팩시밀리 서비스가 되는 것은 국내에서 첫 실용화 된 것으로 「뉴DJ전략」의 첨단장비 활용의 대표적 사례다.
유세장 도착 5분전 그는 옆좌석에 박 수석 부대변인을 불러 벌써 다음날 일정과 이슈 관리방안을 설명하고 이를 조승형비서실장에게 연락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7곳 유세장을 1시간 간격으로 찾아가는 버스투어는 그야말로 「소매상식유세」. 세브란스병원 출신 간호사 송미숙씨(26)가 탄 성대보호제 물로 김 후보는 입가심을 했으나 토막잠도 잘 시간이 없을 정도로 강행군. 마지막 삼척에서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한쪽에 불을 켜놓은 연단에 오른 그는 담담하게 듣는 유권자의 한표라도 더 얻으려는듯 성실히 할 얘기를 마친뒤 『이곳도 변하고 있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오후 6시35분 강릉의 마지막 서울행 비행기 출발시간에 겨우 댄 김 후보는 그제서야 토막잠으로 피로를 씻는다.<박보균기자>
◎정주영후보/식사는 5분… 새벽 6시 당무 시작
남들은 가장 깊은 잠에 빠져있을 무렵인 새벽 3시30분,국민당 정주영후보의 하루는 시작된다.
짧게 자는만큼 숙면으로 피로를 푼다. 숙면의 비결은 잠들기 전 「온몸을 흠뻑 빠는」냉온탕욕이다.
눈을 뜨면 바로 2층 침실내의 안락의자에 앉아 약40분간 신문을 본다. 거의 모든 중앙일간지와 경제지를 대충 읽고 필요한 것들은 즉석에서 메모한다. 요며칠 사이에는 상업은행 명동지점장 사건을 특별히 챙겨읽는다.
신문읽기를 끝내면 바로 옆에 붙어있는 욕실로 들어가 다시 간단한 냉온욕을 하고 책상에 앉는다. 오늘 일정을 챙겨 보고 행사장에 나가 할 연설문을 메모한다. 비서진이 써올린 유세 예정지 특성과 지역공약문건,여러가지 연설초고를 보면서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 취사선택 한다. 전날 방송된 관련뉴스를 별도로 밤새워 편집한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전날의 방송효과도 점검한다.
5시쯤 2층 원탁테이블 오른쪽에 몽구씨로부터 아들 6형제와 조카가 순서대로 앉아 같이 조반을 든다. 식사는 5분 정도로 끝난다. 정 후보가 수저를 놓는 순간 모두 수저를 놓아야 하는데 음식을 남기면 곤란하다. 물론 말할 시간은 없다. 최근에는 경호상의 문제 때문에 수십년간 해온 걷기 출근을 중단하고 대신 현대 본사에 부속된 헬스클럽에 가 관절을 푸는 운동(에어로빅이라지만 실제로는 맨손체조 비슷하다)을 약20분간 한 다음 당사에 출근하면 오전 6시.
당사에 도착한 정 후보는 새벽같이 찾아온 손님들을 만나느라 분주하다.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불같이 서두르는 성격탓에 아침일을 후다닥 끝내고 나면 유세를 떠나기 전 짧은 시간이 남는다.
오전 10시 여성당원 모임인 「더불어 모임」을 찾아 1천여명에게 즉석 연설한뒤 다시 중앙병원옆 공터에 대기중인 헬기에 오른다. 헬기중간자리 오른쪽 창가에 자리잡은 정 후보는 창을 통해 땅밑을 내려다 보다가 이내 잠들어버린다. 그의 토막잠은 굉음과 요동 속에서도 도착 때까지 천연덕스럽게 계속된다.
30분 정도의 비행 끝에 평창에 도착하자 인근 고수부지 행사장에서 방송하는 국민당가가 들린다. 청년당원들의 「정주영」「대통령」연호속에 유세장에 입장하면서 그의 표정은 점차 상기되기 시작한다. 「정치는 사업보다 쉽고 훨씬 재미있다」는 독백을 되뇌는듯 하다.
「하고싶은 얘기 맘대로 해서 좋다」던 정 후보의 연설은 날이 갈수록 톤이 높아간다. 길든 짧든 강조하는 부분은 반양김 부분이다. 점심은 항상 간단한 설렁탕을 즐긴다. 설렁탕에 밥을 말아 탕그릇을 기울여 국물까지 말끔히 떠먹는다. 항상 『자,장사 잘하세요』라며 주위사람들이 식사를 채 마치기도 전에 벌써 자리를 일어서 나간다. 헬기와 승용차를 번갈아 타며 홍천·춘천으로 연설회는 이어졌다.
어둠이 짙어지기전 서둘러 헬기로 귀경한 정 후보의 가장 중요한 일정은 저녁식사 약속이다. 그는 여러사람을 집이나 성북동 현대영빈관으로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길 좋아한다. 식사엔 으레 반주가 곁들여진다. 자리가 무르익으면 정 후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가 애창곡 『이거야 정말』을 부른다. 당연히 박수가 나오면 『쨍하고 해뜰날』이나 『가는 세월』을 앙코르로 부른다.
이같은 회식이 아닐 경우 정 후보가 별도로 만나는 사람은 정말 중요한 사람들이다. 중요한 자문을 줄 수 있는 사람이거나 정치적으로 꼭 만나야할 사람이다. 물론 절대비밀이다. 그러나 무슨 모임이든 10시를 넘기지는 않는다. 대개 9시 이전에 끝나며 집으로 돌아와 다시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냉온탕으로 피로를 푼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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