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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대 공수 이후의 세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원로시인 서정주(77)씨가 신작 시를 발표했다. 지난 7월 부인과 함께 한 3년 동안 세계적인 장수촌 코카서스 지방에서 건강하게 살며 건강한 시도 쓰겠다고 러시아 유학 길에 올랐던 서씨는 이 달 초 꿈을 포기하고 귀국했다.
귀국직후 『세계의 문학』겨울호에 발표한「롸씨아 시」5편은 러시아에서의 체험을 다룬 시.
『노아의 홍수 뒤에 소생해 나온 사람들의 세상이랄까/아니면 환난의 에집트를 빠져 나와서/홍해의 바다 속에 기적으로 열린 길을 통해/간신히 뺑소니쳐 나온 모세의 족속들이 탈까』라며 사회주의를 빠져 나온 러시아의 현재상황을「모세의 탈출」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모세의 탈출」로 비유되는 사회혼란과「흉흉한 민심」에도 불구, 서씨는 서씨 특유의 정신과 시적 방법으로 시공을 초월해 인류보편의 사랑, 혹은 동경을 그린다.
『하늘의 어느 이쁜 시골의/복사꽃 한가지가/심심하여 사뿐히 내려온 듯이/여기 마스크바 구석의 장터에 웅크리고 앉아/깊은 수풀에서 따 모아 온 산딸기들을/너무나도 싼값으로 팔고 있는/삼베빛깔의 숱 짙은 머리의/그립게는 아리따운 롸씨아의 미녀./깊은 바다 빛의 사랑어린 눈동자여/그대 그 손톱들에 끼인 그 때를/더없이 맑은 물에/내 손수 며칠이건 씻어 주고만 싶어라.』모스크바 한 장터의 처녀에게서 읽어 낸 이 시를 보면서「조선의 시선」이라는 서씨에 대한 극찬이 허사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서씨의 시에는 시공을 초월한 조선의 풍류도내지 신선도가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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