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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말의 격」 높여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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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후보등록을 하기가 무섭게 곧바로 유세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부터 얼마나 많은 「말」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쏟아질는지 모를 판이다.
우리는 이런 본격적인 유세전을 시작함에 있어 한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다름아니라 선거기간중 「말의 품위」에 좀 신경을 쓰자는 것이다. 선거전이 치열해질수록 말은 많아지고,또 격해지기 쉽다. 서로 상대방을 깎아내리고,자기자랑을 하게 마련인데 이 과정에서 비난·욕설·인신공격 등이 대량 동원되는 것이 지난날 선거에서 본 우리의 경험이다. 최근에는 높아진 국민수준과 정부의 중립선언 등으로 각 정당들이 많이 자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선거에서도 눈살 찌푸릴 원색적 표현들이 쏟아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가령 얼마전 정당간의 성명전을 보면 남의 신체의 결함을 들어 『건전한 정신은 건강한 신체에서 나온다』는 식의 망발성 비난이 있었고 『달이 너무 밝으면 공연히 멍멍대는 것이 있다』는 기가 찰 공격도 있었다. 또 걸핏하면 『그사람 머리갖고는…』 『○○○씨 처럼 치사한 사람은 안될 것』이라는 등의 인신공격도 나왔다. 선거가 급해지면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모르는 것이다.
선거철의 이런 저질발언 홍수는 곧 선거분위기를 혼탁케 하고 정치세력간의 감정을 악화시킴은 물론 국민정서나 젊은 세대들에 미치는 악영항도 크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번에 모처럼 공명선거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도 드높은 만큼 선거운동에 동원되는 말의 수준도 좀 높아지기를 희망한다. 상대방을 공격하더라도 노골적 비난이나 욕설·인신공격 등은 삼가고,표현이나 어휘선택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의 품위랄까,격조 같은 것을 생각해 가며 발언한다면 선거분위기가 얼마나 좋아질까. 여기에 멋진 유머라도 간혹 곁들여진다면 유세가 축제로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선거발언이라도 그것은 공인의 공언이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품위는 갖추는 것이 당연하다. 더욱이 대통령후보라면 대통령후보답게 말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각 정당과 후보들이 유세전에 나가면서 이런 점을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아마 조금만 유의하고 신경쓰면 현저히 개선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말은 예나 이제나 맞는 말이다. 점잖게 말하면 손해볼지 모른다는 우려는 아마 기우일 것이다. 상대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는 미 캘리포니아대의 연구결과가 최근 국내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고 비방하는 선거방식에 유권자들이 거부감을 보이고 있으며,정책현안 제시와 가벼운 자기 약점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미국 얘기지만 우리의 경우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선거철 「말」에 대한 후보와 정당들의 현명한 성찰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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