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도올고함(孤喊)

하늘도 '자연'을 따르거늘 인간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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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개도 불편해서 안 다니는 인위적 계단길. 옆으로 다니니 길이 나 산만 망가진다.


인류 최고의 지혜서 중 하나인 '노자도덕경'을 펼치면 이런 말이 나온다:인법지(人法地)! 여기서 법(法)은 '본받는다' '법칙으로 삼는다'는 타동사이므로, 이 문장은 "사람은 땅을 본받는다"라는 뜻이 된다. 사람은 어차피 땅 위에서 산다. 땅의 법칙을 어기고 살 수가 없다. 먹는 것도 다 땅에서 나고 죽어서도 다시 한 줌의 땅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런데 이 땅은 무엇을 본받는가? 지법천(地法天)! 땅은 하늘을 본받는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야 땅은 그 생명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하늘과의 교섭에서 모든 풍요로움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늘은 또 무엇을 본받는가? 천법도(天法道)!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고 한다. 도(道)는 길(Way)이며 사물운행의 법칙(Law)이다. 하늘은 법칙을 본받아 운행하는 것이다. 태양이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 밤낮과 사계절이 반복되고,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이 모두 도(道)인 것이다. 그런데 노자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또다시 질문을 던진다. 도는 무엇을 본받는가? 도법자연(道法自然)!

여기서 법(法)이라는 동사의 목적어인 자연(自然)을 현대어의 자연, 즉 대자연을 의미하는 네이처(Nature)라는 명사로 번역하면 매우 곤란하다. 현대어의 자연은 이미 이 문장에서 논의된 땅과 하늘, 즉 천지(天地)라는 개념 속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도는 길이며 법칙이며, 그것은 자연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自) 그러함(然)"을 본받는 것이다. "스스로 그러함"이 곧 자연이요, 그것은 사람과 땅과 하늘과 도의 궁극적 모습이다.

자연(自然)을 가리켜 왕필(王弼)은 "무칭지언(無稱之言)"이라 했으니, "스스로 그러함"은 인간의 언어를 단절시키고 인간의 모든 인위적 조작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엊그제, 그토록 사랑하면서도 평소 시간이 없어 오르지 못하는 뒷산에 모처럼 올라가 보았다. 약수터 위로 아주 평범하고 아름다운 돌길이 있었는데 그것을 공원녹지과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돌연히 매우 인위적인 계단길로 바꾸어 놓았다. 게다가 일본풍으로 하얀 잔돌까지 깔아놓았다. 그 돌길은 토사의 위험이나 특별히 수정을 요구해야 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 돌길은 수천 년을 걸쳐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온 것이다. 그 스스로 그러한 돌길은 돈 들여 만든 계단길보다는 몇천 배 가치가 높은 아름다운 길이다. 나는 그 길을 40년 이상 다녔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의 추억이 담겨 있을 것이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무슨 용도로, 누구를 위하여 이런 짓을 하는가? 공원녹지과에 남아돌아 가는 예산을 집행하기 위한 것일까? 도대체 왜 아름다운 국토를 마구 개조하는 것만이 "개발"이라고 생각하고, "발전"이라고 생각하는가? 문제는 그러한 공적 행위에 아무런 공적 프로세스가 개입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 길을 그렇게 고쳐야 할 당위성을 시민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결여되어 있었다. 몇몇 공권력을 지닌 사람들의 안목에 의해 강행된, 전혀 무의미한 짓에 시민들의 세금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금요일(15일) 젊은 지자체장들의 모임인 청목회(靑牧會)가 본사에서 열렸다. 진지한 자리였다. 나는 그곳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개발에 쫓기는 지방자치의 효율성이 우리 민족을 공망(共亡)의 길로 빠트리고 있지는 아니한가요? 저는 여러분들을 CEO라고 부르기를 원치 않습니다. CEO 경영마인드를 넘어서는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 세기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아니할까요?"

도올 김용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