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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 페르시아 古都 단숨에'폭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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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6일 고대 페르시아 왕조의 유적으로 가득 차 있던 밤시의 2천년 고도가 한순간의 강진으로 폐허로 변했다. AP.CNN 등 외신에 따르면 지진은 이날 새벽 흙벽돌로 지어진 고대 성곽과 페르시아 왕조의 유적으로 가득 찬 남동부 케르만주 밤시를 덮쳤다. 모하마드 알리 카리미 케르만주 주지사는 이란 관영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확실한 것은 밤의 역사 유적지들이 완전히 파괴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4만명 설도=현지 관리들에 따르면 밤시와 기로프트.코누즈 등 인근 지역의 통신망이 이번 지진으로 모두 붕괴됨에 따라 무전기와 위성전화만에 의지해 상황파악을 하고 있어 피해자 집계도 늦어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피해 규모 추산은 엄청나게 커지고 있으나 사망자 추계는 아직 혼선을 빚고 있다.

일부 외신들은 사태 초기 현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26일 오후 현재 확인된 사상자만 2천여명"이라고 전했지만 이후 이란 국영 TV는 "사망자 수는 최소 4천명이며 부상자는 최소 3만명"이라고 보도했다.

CNN은 "최대 2만명이 사망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비상사태장관을 인용, "사망자가 1만7천명에서 최대 4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카리미 주지사도 "우리는 아직까지 정확한 피해 규모와 사망자 수를 알 수 없지만 피해가 크고 사상자가 매우 많을 것으로 보인다"며 "잔해 더미에 깔린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 가능한 모든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참혹한 현장=이란 관영 TV에 따르면 주로 흙벽돌로 지어진 가옥의 60~80%가 폭삭 주저앉았다. 시가지 곳곳에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흙벽돌 건물의 잔해가 더미를 이루고 그 위에서 아이들과 부모를 찾는 이들의 비명이 터졌다. 일부 주민은 사망한 딸이나 아들.남편.아내의 시신을 천으로 덮어 임시 장례식을 치렀지만 그렇지도 못한 주민들은 시신을 부여잡고 오열을 터뜨리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은 "얼굴이 먼지로 뒤덮인 한 여성은 망연자실한 채 '내 아이, 내 아이'를 하염없이 중얼거렸다"고 보도했다.

사망자 수가 너무 많아 구조팀은 시체를 담요에 둘둘 말아 밴 차량들 뒤에 더미처럼 쌓아놓은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IRNA 통신은 "구호팀이 훈련된 개를 이용해 매몰된 생존자들을 찾아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병원도 붕괴해 부상자들을 수용하기 어렵다.

지진이 새벽에 발생해 피해가 상상을 뛰어넘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하산 코쇼로 케르만 주의회 대표는 "이른 아침에 지진이 일어나 잠을 자고 있던 수많은 주민이 건물더미의 잔해에 그대로 깔려 숨졌을 것"이라며 "이번 지진의 참상은 상상하기 힘들 지경"이라고 전했다.

◆혼란스러운 구호작업=지진이 일어나자 인근 도시의 응급 구호팀이 차량과 헬리콥터 등으로 총동원됐다. 경찰은 구조팀이 빨리 현장에 도착할 수 있도록 밤시로 이어지는 모든 길을 차단했지만 출동한 구급차와 구조대 및 재난을 피해 빠져나가려는 밤시 주민들이 뒤엉키며 통행이 거의 중단됐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또 피해가 워낙 커 구조활동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지사의 사무실과 같은 건물에 있는 구조 단체의 사무실도 모두 무너져 내려 구조팀들은 광장에 임시 사령부를 설치해 긴급 활동에 나섰다. 이 지역 물과 전력 공급도 모두 끊겼다. 이란 정부는 생존자 수색을 위한 수색견과 구호장비 등의 지원을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이란 내무부는 성명을 통해 "생존자 수색을 위한 구호장비와 수색견, 의약품.식료품.담요 등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부는 재해구조부대와 구호물품을 실은 대형 수송기 2대를 현지로 급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도 "이란 재해복구를 위해 최대한의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독일은 수색견과 매몰된 생존자를 찾아내는 특별 구호장비 등을 갖춘 '시바(SEEBA)'라는 이름의 해외 신속구조부대를 파견할 것으로 보인다. 유엔도 긴급 지원을 약속했다.

채병건.윤혜신 기자,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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