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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자율로승화시키자”/시리즈를 마치며…(대학가가 변했다:8)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일부의 반향락운동 함께 나설 필요/“인격교육 교양과목에 설치” 주장도/“학점이 취업좌우” 사회제도도 검토를
90년대 변화속에 격동하는 우리의 대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중앙일보의 『대학가가 변했다』시리즈가 계속되는 동안 편집국에는 대학교수·학생·학부모는 물론 일반독자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일부는 대학가의 과소비·향락,사제지간과 친구들사이의 정이 사라지고 취업대기소로 변해버린 대학을 개탄하기도 했고 대학이 그렇게 비관적인 모습만은 아니라고 항의하는 전화도 있었지만 『우리의 대학은 이제 새로운 가치관과 모습으로 자기정립을 해야 한다』는데 모두 같은 의견이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대학가가 우려할만큼 과소비와 향락에 물들어가고 있다는데 공감을 표시했다.
서울대 김동진학생처장은 『일부 대학가가 마치 환락가를 방불케 하는 것은 사회민주화가 확산되면서 새로 누리기 시작한 대학의 자유와 다양성을 학생들이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한채 마구잡이로 발산하는 것을 자유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라며 『이데올로기에 찌들어 있던 80년대를 거치고 90년대를 맞은 우리 대학가는 이제 자유를 자율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같은 대학 심리학과 원호택교수도 『억압속에서 타율적인 교육을 받아온 대학생들은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주체하지 못하고 소비·향락문화에 빠져들기 쉽다』며 『함께 사는 것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노동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교육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원 교수는 또 『외국의 경우 사회지도층이 될 대학생이 올바른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에 교양·전문과목외에 인격교육이 반드시 들어있다』며 우리 대학에서도 이같은 인격교육이 실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의 개인주의와 퇴폐·향락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건전하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연세대 「국어운동학생회」의 차모양(23·식품영양 4)은 『일부 학생의 퇴폐·향락적 문화는 반사회적·반지성적인 저질 자본주의 문화의 찌꺼기이므로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면서 『그러나 신촌일대의 유흥가에 출입하는 대학생은 전체의 10% 미만인데 사회의 지나친 우려로 대학이 마치 사치와 퇴폐·개인주의의 온상인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K대 박모군(24)도 『학생들이 생판 모르는 사이인데도 록카페에서 만나자마자 여관으로 직행한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불만이다. 과거에 비해 성이 개방되는 풍조인 것은 분명하지만 대학생은 성인이고 그들의 행동을 고등학생들의 불장난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기성세대의 편견일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교수에 대한 존경심이 없고 친구들 사에도 우정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엇갈린 진단과 처방이 나왔다.
일부 학생들은 『대학이 취업 대기소로 변하고 학점이 입사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마당에 어떻게 우정만을 앞세우고 진지한 인간관계를 맺으라고 할 수 있느냐』며 「현실적인 고충」을 말했다.
원인이 무엇이든 날마다 대학도서관이 학생들로 가득차는데도 대부분 취업에 필요한 공부를 하고 있을 뿐 정작 인생에 도움이 될만한 광범한 독서를 하거나 전공에 대한 집요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은 대학의 퇴보이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수님을 찾아가봤자 귀찮아 하는 기색이 역력하고 몇번을 봐도 내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사제의 정을 가지란 말이냐』『연구보다는 기업의 프로젝트를 따거나 신문에 이름내기에 더 열심인 교수를 보고 환멸을 느낀다』는 등의 학생들 대답은 대학을 살리기 위해 교수들이 고민해야할 일들이 많음을 보였다.
취재과정에서 학생들 스스로 과소비와 향락을 추방하기 위해 정화운동을 벌이고 자가용 등교안하기,사제지간의 정을 회복하기는 등 나름대로 새롭고 건전한 대학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조용히 노력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은 우리대학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의 대학은 지금 변화의 격랑속에 있다.
대학가에 경찰이 상주하고,그에 대한 반발로 많은 학생들이 책이 아닌 돌과 화염병을 잡으며 편향된 이데올로기에 빠져들었던 상황은 이제 바뀌었다.
하지만 주어진 자유를 올바른 대학문화의 정착으로 이어나가지 못하고 과소비와 향락·개인주의에 빠져드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대학은 이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나가야 한다. 그것은 역사이래 어느 공동체에서나 본빌에선 변화가 없었던 「최고지성의 연마」와 다음 세대를 책임질 「지도적 인격의 수련」,그 틀안에서 우리의 역사전통과 개성을 새롭게 다듬어내는 일이 될 것이다.<윤석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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