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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 우승 주역 하은주 선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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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12면

학교 측에 농구를 그만두고 전학을 가겠다고 말했다. 학교 측에서는 만일 그녀가 다른 학교에 갔다가 거기서 다시 농구를 시작하면 큰 손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다른 학교에 가려거든 운동 포기각서를 쓰라”고 했다.

202cm 키만큼 길고 험했던 그녀의 농구 인생

여기까지가 1998년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향하기 전의 농구선수 하은주(24ㆍ신한은행) 선수의 이야기다. 하은주 선수는 치료를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일본 학교의 제안을 받고 일본행을 택했다. 그녀의 농구 인생에서도 이때는 큰 전환점이 됐다. 한국에서는 체육특기자 조건을 모두 포기했기 때문에 더 이상 농구를 할 수 없었지만 일본에서는 농구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하 선수는 일본에서 고등학교(오카고)와 대학교(시즈오카 단과대)를 다녔다. 낯선 땅에서 혼자 학교를 다닌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점차 적응해가며 웃음도 되찾았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한 후 진로를 결정할 때가 되자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일본여자농구(WJBL) 규정상 외국인은 자국 리그에서 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은주 선수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2003년 일본에 귀화했다. 그리고 WJBL 샹송화장품에 입단했다. 데뷔 첫해에 하 선수는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2m2㎝의 장신 하은주 선수 덕분에 샹송은 우승을 밥 먹듯 했다.

일본 국적을 취득한 후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일본대표 자격도 함께 얻은 것이다. 한국의 농구인들로서는 엘리트 체육 시스템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다가 일본행을 택한 하은주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한국을 격파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게 힘들었다. 하 선수는 2005년 일본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하 선수 자신 역시 한국인으로서 일본 대표가 된다는 게 괴로웠을까. 일본 대표에 선발된 뒤 무릎 부상을 이유로 대표선수로서는 한 경기도 뛰지 않았다.

하은주 선수의 일본 생활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2006년 봄이다. 하 선수는 그동안 꿈꿔왔던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진출을 눈앞에 뒀다. WNBA의 LA(로스앤젤레스) 스파크스와 계약하고 여름에 시작하는 리그에 참가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소속팀은 미국 진출을 순순히 허락하지 않았고, 하 선수와 팀 사이에 불화가 생겼다. 그리고 그해 6월 말 하 선수는 “한국 국적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녀는 그해 8월에 안산 신한은행에 입단했다. 신한은행은 하 선수를 영입하자마자 겨울리그에서 우승했고, 하 선수는 한국여자프로농구(WKBL)에서 다시 한번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2007년, 다시 한국 국적을 회복한 하은주 선수는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나섰다. 한국은 8년 만에 이 대회 정상을 탈환했고, 동시에 2008 베이징올림픽 본선 티켓도 차지했다.

이처럼 하은주 선수는 지금까지 누구도 겪기 어려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하 선수는 나이에 비해 속이 깊고 배려심도 남다르다. 서류상으로 두 번이나 국적을 바꿨고, 곡절을 겪으며 농구를 했던 하 선수에 대해 궁금한 점을 모아봤다.
하 선수는 한국이 싫어서 일본으로 갔나?

그녀는 “한국이 싫어서 간 게 아니라 농구를 하기 위해 일본에 간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일본에서 지낸 8년 동안 몸은 일본에 있지만 마음은 한국과 일본에 모두 있다는 게 하 선수의 딜레마였다. “친구들은 일본에 있고, 일본은 내가 힘들 때 손을 내밀어준 은인의 나라다. 하지만 조국은 늘 한국이었다. 2006년 초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을 보면서 한국을 응원해 동료들에게 한 소리 듣기도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 선수에게 태극마크의 의미는 어떤 것?

어린 시절 농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가장 큰 꿈은 국가대표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쉽게 이뤄질 수도 있었던 그 꿈은 결국 농구를 시작한 지 14년 만에야 이뤄졌다. 하 선수는 “늘 갖고 있는 사람들은 모른다. 나처럼 한 번 잃어버린 사람은 조국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태극마크를 달고 태릉에서 훈련하는 모든 과정이 즐거웠다”고 밝혔다.

“우승을 놓쳐본 기억이 없다.” 하은주 선수는 정말 농구를 잘하나?

아직은 기술보다 키가 더 점수를 받고 있다. 2m2㎝의 한국 여자농구 최장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위력적이다. 그러나 비슷한 신장의 적수와 겨뤄본 적이 없다는 게 국제무대에서는 약점이 될 수 있다. 하은주 선수는 “아직도 코트에 나서면 심리적으로 조절이 잘 안 된다. 욕심만 내고, 너무 흥분한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모자란다. 갈 길이 멀다”고 인정했다.

하은주 선수의 별명은 ‘수재’?

하은주 선수는 지난해 일본의 세토쿠대학 영문과에 편입했다. 그는 “농구가 좋고, 현재 농구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만약에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자격이 없어서 못하면 억울할까 봐 공부를 한다. 그런데 공부라는 게 중독성이 있어서 학위나 자격증을 따는 게 점점 재미있어진다”고 설명했다. 하 선수는 이미 일본에서 영어 선생님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이 있다. 일본어는 물론 원어민 수준이고, 영어 실력도 수준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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