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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성 높은 외화 국내 상영 "칼질" 심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예술영화를 들여와 공연윤리 위원회 심의와 상관없이 수입업자 스스로 필름에 가위질을 해대는 바람에 영화를 불구로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비싼 수입 가를 불고도 업자(또는 극장 주)들이 이같은 어리석은(?)짓을 반복하는 이유는 예술을 장사로만 여기는 상업주의 때문이다.
즉 예술영화는 대체로 상영시간이 길기 때문에 일일 상영횟수를 늘리려고 내용을 뭉텅이로 잘라 내고 있다. 또 오락영화에 길들여진 관객이 지루해 할까 봐 몇몇 장면을 들어내거나 오락영화의 기준에 맞춰 관객이 싫어할 만한 부분을 자르는 사례도 있다.
이 때문에 영화의 작품성과감독의 저작권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모처럼 예술영화를 감상하러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불쾌감을 안겨 주고 있다.
최근 국내 상영된『반 고흐』의 경우 최고작가로 대접을 받고 있는 모리스피알라 감독의 국내 첫 소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30분 가까이 잘려 나가 영화팬들의 실망을 샀다.
영화평론가 강한섭씨는『영화교과서에 늘 기록되는 과작의 감독 피알라의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까지 했으나 영화가 훼손된 것을 알고는 분통이 터졌다』며『명작소설의 경우 작가 동의도 없이 출판사가 임의로 내용을 삭제하는 경우가 있겠느냐』고 영화계의 후진성을 개탄했다.
올해 프랑스영화 흥행을 주도했던『퐁네프의 연인들』은 영화 도입부 6분 가량을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잘라 냈다.
『퐁네프…』의 임의 삭제된 부분은 분량은 적지만 레오 카락스 감독의 연출의도를 밝히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어서 영화의 성격이 엉뚱하게 변질됐다.
즉 감독은 주인공이 끌려간 부랑자 수용소 내부를 사실적으로 묘사해 유럽의 앞날에 대해 불안한 진단을 하고 있는데, 업자가 이 부분을 들어냄으로써 영화가 조금 특이한 러브스토리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퐁네프의 연인들』등은 작품을 훼손한 죄는 그대로 남지만 그나마 흥행에 성공해 업자들의 주머니를 불리게는 했다 하나 대부분의 다른 경우는 흥행도 안되고 돈만 날리면서 욕은 욕대로 먹는 2중, 3중의 어리석음만을 남겼다.
근래의 사례만 해도『비정성시』·『아이다호』『크미치스』등 이 대표적이다.
대만 감독 중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후샤오시엔이 연출한『비정성시』는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 작이어서 많은 영화팬들의 관심을 모았으나 1시간 가까이 삭제된 모습으로 나타나 흥행실패를 자초했었다. 또『아이다호』도 주연배우인 키누아 리브스·리버 피닉스가 10대 팬에게 인기가 있는 것을 흥행과 연결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1시간이상 잘라 내 역시 흐지부지 국내상영이 끝나 버렸다.
폴란드영화『크미치스』의 경우도 줄거리는 겨우 정한 채 전투장면만을 살려 상영했으나 당연히 관객들의 외면을 샀다.
영화내용을 종잡을 수 없는 판에 해외영화제 수상작이니, 인기 주연 배우를 앞세워 봐야 효과가 있을 리 없었음은 자명한 이치다. 영화애호가들은『예술영화 전문 관도 조금씩 자리 잡아가고 있는 상황이고 전문 영화 팬 층도 상당히 두터워진 만큼 예술영화에 관한 한 정공법의 흥행이 오히려 영화업자들 스스로를 위하는 방법』이라고 충고한다. <이헌익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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