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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없이 국제정세 폭넓게 논의/노 대통령 방일 정상회담의 의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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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클린턴 정책」 공동대응안 등 모색/의전 없는 「실무회담」 관례로 남겨
노태우대통령은 8일 당일치기의 일본 방문을 함으로써 재임중 11번째 외국나들이를 했다.
노 대통령은 이번 한일정상회담을 특별한 현안이 있어 실현한 것이 아니어서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았다. 물론 가시적 성과는 기대하지 않았고 있을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미국의 정권교체,중국의 지도층개편 등 세계정세의 변화에 따른 양국 정상간의 폭넓고 진지한 의견교환은 그런대로 의미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해관계가 예민하고,또 가장 가까운 한일 두나라 정상이 번거롭고 복잡한 의전절차의 틀을 깨고 실무정상회담의 관례를 만들었다는 것은 평가됨직하다.
○…양국정상은 이날 환영행사 등 공식 의전절차없이 가벼운 차림으로 1시간50여분 단독회담을 가진데 이어 오찬을 겸한 70분간의 확대회담을 가졌다.
또 여느때와 달리 양국 실무대표간의 사전의제선정 및 합의내용 조정 등이 없이 자유토론형식으로 회담을 진행했다.
이런 것들은 일면 우리 외교수준내지 질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의전이 반이상이라는 비아냥까지 받아온 우리 정상회담 양태는 격식을 따지고 모양새를 의식하는 측면이 강해 쓸데없는데 외교력과 국고를 소모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국익과 관계되는 실질문제가 뒷전에 밀린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특히 권위주의 시대의 역대 집권자들이 공식방문을 통한 강대국 정부수반들과의 회담을 정권안보의 한 형태로 활용해온 측면이 있었음은 널리 알려진 폐해였다.
정상회담의 세계적 추세 또한 공식방문에서 실무방문으로 바뀌고 있다.
따라서 긴밀한 협력관계의 유지가 절실해진 인접 「우방」 일본과 이런 형태의 만남을 시도한 것은 뒤늦은 감이 있다. 한일양국은 이를 시발로 이같은 형식의 정상회담 연례화 및 수시 교차방문의 전통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은 예견했듯 내용면으로는 구체적 사안에 대한 논의보다는 국제정세 전망에 대한 포괄적인 인식을 교환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양국은 주변정세의 급변,특히 미·러시아·중국 등 강대국들의 정권교체 및 정책변화조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인식을 교환하고 그에 따라 사안별로 공동대응할 것이 있으면 하자는 입장이었다. 이점에서 양국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협력의 필요성을 재확인한 것은 평소와는 다른 의미와 강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우리 쪽에서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며 금기시했던 한일간 군사협력추진이 공식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정상이 협력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과거의 정상회담에서 수사적으로 협력을 제기했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 외교안보전문가들은 한일양국은 과거에는 외부 요인에 의해 협력이 당연할 수 밖에 없었으나 냉전체제가 무너진 지금은 새로운 관계설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양국정상이 무역불균형 시정 및 통상협력확대를 새삼 역설하고 수행했던 양국 외무장관이 별도 회동에서 종군위안부 문제의 해결 노력을 밝힌 것도 우연 아니다.
양국정상은 또 미국의 동아시아지역에서의 지속적인 역할,러시아 및 중국의개혁·개방지지 및 한·러시아 지원 등에 인식을 같이 했는데 이는 이 지역 주변정세에 대한 의구심이 크게 작용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양국정상이 특히 클린턴 미 행정부 등장에 즈음해 미국의 동북아지역 안정역할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공통인식표명은 클린턴 행정부에 기대의 차원이 아니라 촉구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볼때 양국은 새로운 정세속에서 종전과는 다른 협조·협력관계를 모색,추진해 나갈 것으로 전망되며 내년 초반으로 예상되는 일본 총리의 방한이후까지도 이러한 기조는 계속될 것 같다.
○…노 대통령은 8일 오후 귀국길에 오사카 공항 귀빈실에서 현지 교민대표 30여명을 30여분간 접견하고 격려.
노 대통령은 『나는 오늘 회담에서도 70만 우리 동포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더욱 적극적인 지원을 당부하면서 이 문제는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고 소개하고 『내년부터는 재일동포들에 대한 지문날인제도도 완전히 철폐될 것이며 이같은 결실은 정부의 노력과 함께 여러분 스스로 일본사회의 훌륭한 성원으로 최선을 다해온 결과』라고 치하.
노 대통령은 이날 오사카에서 열린 「사천왕사왔소」 행사에 대해 언급,『1천4백여년전 우리 문화가 어떻게 일본에 전해졌는지를 알려주는 훌륭한 문화행사가 동포 여러분의 힘으로 해마다 열리고 있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이처럼 좋은 날 조국의 대통령까지 왔으니 이럴 땐 「대통령 왔샤」라고 합니까』(오사카지방의 「왔샤」라는 말의 어원은 우리말 「왔소」라는 것)라고 물어 좌중은 한차례 웃음.<교토=김현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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