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변화와 한일협력(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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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일의 경도 한일정상회담은 회담의 시기와 회동의 형식에서 특히 주목을 끌었다. 미국의 정권교체가 예정된 시점이라 자연히 논의의 초점은 한미일관계에 쏠릴 수 밖에 없었다. 양국 정상은 향후의 동북아국제정세에 대해 기존 한미일 3각 협력체제를 유지하면서 그 토대위에서 새로운 변화를 수용한다는 현장유지원칙에 의견을 같이했다. 노태우대통령과 미야자와 일본총리는 비록 미국의 정권이 교체된다해도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종래 역할이 지속돼야 한다고 밝혀 이 지역의 국제안보체제에 관해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동북아질서가 변화하면서 최근 한일관계는 우려할 정도로 악화됐다. 이 지역의 냉전적 대결체제가 무너지면서 한국은 소련·중국과 수교하는 등 관계를 개선했다. 그 과정에서 소외감을 느낀 일본은 북한과의 수교협상을 개시했다. 바로 그때 정신대문제가 표면화되고 한일간 무역역조가 다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이런 일련의 사태로 인하여 한일관계는 65년 수교이후 최악이라할 정도로 냉랭해졌다.
임기말의 노 대통령은 자기 재임기간에 악화된 한일관계를 북방정책 이전의 우호관계로 환원시키는 전기를 마련해 차기 정부에 「부의 유산」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배려에서 이번 회담을 구상한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형식면에서도 번거로운 절차를 생략하고 특정된 의제없이 자유롭게 만나 제한없는 대화를 나누었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임기말이라는 약점이 있긴 하지만 이런 식의 실무정상회담은 벌써부터 활용했어야 할 방식이다.
양국 정상은 미국 정부교체에 따른 동북아 국가들의 대응방략,중국과 러시아의 변화에 따른 평가 및 공동대처문제를 비롯하여 북한의 핵무기문제,한일간의 각종 현안 등에 폭넓게 의견을 나누었다. 어떤 합의도 있었음직하다. 악화됐던 양국 관계가 이번 회담을 계기로 순조롭게 풀려 나가게 되길 기대한다.
일본에서도 양국 정상이 한미일협력체제의 유지·강화를 강조한데 대해 호의적 반응을 보였고,한일협력체제가 개선됨으로써 이 지역에서 일본의 입장이 유리해질 것에 기대를 거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됐고 동북아의 역관계가 전반적으로 재조정되고 있는 이때 한일우호관계의 회복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정신대문제를 포함하여 일본 군국주의 잔재를 청산하고 미결상태에 놓여있는 여러 현안문제에 대한 해결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오히려 개선된 한일관계속에서 그런 문제는 더욱 빨리,더욱 철저하게 해결되도록 양국은 실무차원의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 미묘한 시기에 한국이 일본에 지나치게 경사되는 인상을 주는건 다른 3강과의 균형이란 관점에서 극히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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