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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집」학생들 「있는티」낸다(대학가가 변했다:4)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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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고급차에 룸살롱서 생일파티/위화감 조성하며 “유전유죄냐”강변
빈부격차는 어느 사회,어느 곳에나 있게 마련이다.
대학가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학가의 빈부격차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빈농의 아들이거나,재벌의 아들이거나 같은 대학을 다닌다는 동질감으로 함께 어울려 소주잔을 기울이고 토론하는 모습은 대학이 지닌 건강함과 신선함의 표현이었다.
「있는 집」의 아이들도 극소수를 제외하곤 결코 「있는체」하지 않는 최소한의 미덕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90년대의 대학가는 다르다.
수준에 맞는 학생들끼리 몰려다니는 계층분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신분」은 그들이 몰고 다니는 차로 쉽게 구별된다.
6일 오전 10시쯤 서울 A대 후문 주차장. 창문을 시커멓게 선팅한 검은색 그랜저에서 내린 것은 이 학교 총장이나 교수가 아니라 20대 초반의 남학생과 짙은 화장을 한 비슷한 또래의 여학생이었다.
이들은 잠시후 외제승용차를 타고 뒤따라온 다른 남녀학생 2명과 함께 힐끗거리는 다른 학생들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총총히 사라졌다.
『쟤들이야 별종이죠. 자기들끼리 고급 승용차를 타고 몰려다니지만 과모임 같은데는 한번도 참석하지 않아요. 어느과든지 2∼3명은 그런 아이들이 있어요.』
이 대학 장모군(23)의 말이다.
일부 대학에는 부유층 자제들끼리만 모이는 「귀족 서클」까지 생겨났다.
『고급차 몰고 다닌다고 죄인 취급하는걸 이해할 수 없어요. 사치스럽다고 하지만 지저분한 술집이나 식당에 가기 싫은걸 어떻게 합니까. 솔직히 소주보다 양주 먹고 싶은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압구정동에서 만난 S대 박모군(22)은 『가난한 학생들도 돈 생기면 다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항변했다.
박군은 『학생이 쓰는 돈이 자신이 번게 아니고 모두 부모로부터 받은 것인데다 아무리 자기 돈이라도 함부로 쓰면 흠이 되는게 아니냐』는 질문에 『세상이 다 그런거지 뭘 골치아프게…』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들 「학생귀족」들은 여름에는 요트,겨울이면 스키장에 가는 것이나 수백만원씩을 뿌리며 룸살롱에서 생일파티를 여는 것 정도는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문제는 이들의 흥청망청한 생활태도·소비풍조가 많은 다른 대학생들에게 위화감을 불러일으키고 대학가에 과소비 풍조를 조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전 D대에서 「대학 내에서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총 응답자 4백70명중 72%인 3백38명이 「소비수준의 차이」를 들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돈을 받아 공부를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소비수준」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이질감을 느끼는 것이 90년대 대학가의 모습이다.
『있는 집 애들과 없는 집 자식들이 뚜렷이 나뉘고,친구에게 우정보다는 경쟁심을 느껴야 하고,너나 없이 과소비와 향락풍조에 빠져들고…. 대학이 10여년 사이에 많이도 변했습니다. 대화와 토론·사색이 사라진 상아탑,참 걱정입니다.』
대학의 변화를 계속 지켜봐온 K대 박사과정 김모씨(31)가 진단하는 요즘의 대학이다.<김국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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