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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하임 전 유엔 사무총장 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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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72년부터 10년 동안 유엔 사무총장을 맡았던 쿠르트 발트하임 전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14일(현지 시간) 오스트리아 빈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88세.

발트하임 전 총장은 5월에 처음 심장마비로 쓰러진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의 가족들은 "지난주 퇴원해 자택에서 요양하다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그는 냉전이 휩쓸던 70년대 유엔을 이끌면서 세계 곳곳에서 갈등과 분쟁 해결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 퇴임 뒤 오스트리아 대통령에 오르고서는 과거 나치에 복무했던 경력 때문에 명예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1918년 12월 21일 빈 근교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발트하임은 빈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전쟁이 끝난 후 외교관으로 변신해 캐나다와 유엔 주재 대사를 거쳐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을 지냈다. 냉전이 한창이던 71년 유엔 사무총장이 된 그는 국제분쟁 조정에 정열을 바쳤다. 이란 미 대사관에서 일어난 인질 사태 때는 직접 이란으로 날아가 중재를 시도했다. 70년대 말 캄보디아에서 내전으로 인한 대량 학살이 벌어졌을 때도 국제적인 압력을 통해 문제 해결에 노력했다.

그는 두 번의 임기를 마친 뒤 오스트리아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의 일원으로 복무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련을 겪지만 나치가 저질렀던 어떤 범죄에도 직접 간여한 적이 없다고 해명해 대통령에 올랐다.

그러나 당선 뒤에도 애초 밝혔던 것과 달리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병합되자마자 군에 입대했으며 단순한 하급장교가 아니라 악명 높은 나치 친위대 소속이었음을 증명하는 사진이 공개되자 치명타를 입었다.

이후 소속했던 부대가 발칸 반도 지역의 유대인 4만여 명을 색출해 수용소로 보내고, 그리스에서는 유대인 1200여 명을 학살한 사건을 주도했음이 드러나면서 큰 상처를 입었다. 이스라엘은 그의 대통령 당선에 항의해 자국 대사를 소환했으며 전 세계 유대인 단체와 미국 등 각국 정부도 그와 오스트리아를 경원했다. 그러나 그는 평생 개인적으로 범죄 행위에 직접 가담한 적이 없음을 거듭 주장했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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