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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 로체샤르 원정서 동상 당한 두 대원 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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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4일 귀국한 엄홍길 대장이 동상 치료를 위해 입원 중인 변성호(中).모상현(右) 대원을 찾아 위로하고 있다. 두 대원은 본대에 앞서 7일 귀국했다. [사진=박종근 기자]


"이 정도일 줄 몰랐어. 하루만 더 빨리 내려왔더라면…. "

'2007 로체샤르.로체 남벽 원정대'의 엄홍길(47.트렉스타) 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엄 대장은 14일 귀국하자마자 서울 경희의료원으로 달려와 7일 본대에 앞서 귀국해 동상치료를 하고 있던 변성호(37).모상현(33) 대원을 얼싸안았다.

엄 대장은 "두 사람이 없었으면 로체샤르(8400m) 등정은 절대 성공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캠프4(8100m)부터 정상까지 두 대원이 루트를 개척했다.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로프를 설치하기 위해 수차례 장갑을 벗었고, 너무 지쳐 젖은 양말을 갈아신을 수 없었다. 그새 손과 발은 심하게 얼어붙었다.

주치의인 정형외과 정덕환 교수가 병실 밖으로 엄 대장을 불러내 귓엣말을 전했다.

"괜찮겠죠. 베이스캠프에 오자마자 물을 데워 손발 다 녹였는데."(엄 대장)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발가락은 희생해야 될 것 같아."(정 교수)

엄 대장은 두 발을 붕대로 칭칭 감은 두 대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엄 대장 역시 1992년 낭가파르바트 원정에서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잃었다. 절벽을 오르는 이들에게 발가락은 생명이다. 금세 눈이 충혈된 엄 대장은 두 대원 발에 얼굴을 묻었다.

변 대원은 로체샤르 정상에서 설맹(눈에 반사되는 강한 햇빛에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는 것)이 됐다. 변 대원은 "비디오를 찍기 위해 선글라스를 오래 벗었다가 그렇게 됐다"고 했다. 엄 대장은 모 대원과 셰르파를 먼저 보낸 뒤 캠프4까지 변 대원을 데리고 내려왔다. 제 한몸 가누기도 힘든 절벽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변 대원을 이끌었다.

캠프4에 도착한 뒤 엄 대장은 곧장 베이스캠프로 향했으나 탈진한 두 대원은 캠프4에서 하루를 더 머물렀다. 엄 대장이 그토록 아쉬워한 바로 '그 하루' 두 대원의 발가락 동상은 크게 악화됐던 것이다.

장혜수 기자<hschang@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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