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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에 속보인 한국 정치인들/이재학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미 대통령선거는 4일 빌 클린턴민주당후보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비교적 우리에게 관대했던 공화당정권 기간중에도 한미관계가 적잖게 불편했는데 이제 민주당이 미 의회와 행정부를 장악하게 됐으니 우리의 대미외교 여건이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것으로 보기 힘들다.
미국 우선정책을 앞세우고 있는 만큼 보호무역주의적 색채가 짙어질 것이고 아무래도 공화당보다 주한미군의 감축 및 주둔비 분담문제에 빡빡하게 나오리라 보인다. 전문가나 일반인이나 이번의 미 대통령선거 결과를 보는 눈은 그런 우려에 가득찬 것임을 숨길 수 없다.
그런데 이날 우리 정가가 미 대통령선거 결과에 대해 보인 반응은 그같은 국민정서와는 동떨어져도 한참 동떨어진 것이었다.
『새로운 미국을 내세워 클린턴이 당선됐듯이 신한국건설을 내세운….』
『군사정권을 지지해온 공화당이 패배했으니… 한국민주주의의 장애요인이 사라진 것이다.』
『경제문제를 들고 나온 인물이 당선된만큼 경제대통령을 하자는 내가….』
민자 민주 국민당은 이처럼 미 대통령선거 결과가 12월 대선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아전인수에만 급급했다.
물에 빠진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이겠거니 하고 이해하려해도 착잡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민족과 국가의 장래를 짊어지겠다는 사람들이 새로운 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곰곰 생각해보는 금도는 보이지 못할망정 자신의 유·불리를 계산하고 떠벌리는 경박함만은 숨겨야 옳았다. 그러나 말해 무엇하랴.
청와대도 이 속 들여다 보이는 짓에 가세했다. 지난 88년 9월 노태우대통령이 빌 클린턴 아칸소주지사를 접견,그 자리에서 나누었던 대화내용을 자세히 공개한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깊이와 한국정치의 바닥을 한꺼번에 들여다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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