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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 국산」서봉수의 진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프로 기사들 사이에 서봉수 9단이 화제다. 『대서가 지는 것을 잊었다』는 것이다. 과연 서9단은 최근 7연승을 거두고 있는데 그 7승 중에는 숙적 조훈현 9단에게 3승, 8관왕 이창호5단과의 대국에서 1승이 포함되어 괄목할만하다.
특히 대왕타이틀에 도전, 타이틀 홀더 이5단과의 5번 승부 첫 판을 승리로 이끈데다 국기전에서는 조9단의 도전을 받아 파죽의 2연승으로 조9단을 막판에 몰아넣음으로써 국기위 방어를 눈앞에 두고있다.
국기는 국수중의 국수라는 뜻으로 쓰여지던 호칭. 지금은 프로기사를「아무개 사범」으로 부르는 것이 보통이지만 예전에는 주로「아무개 국수」라고 불렀으며, 일들 중 가장 뛰어난 솜씨의 소유자를 국기라 했다.
그 어원은 그렇다 치고 국기는 서9단이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타이틀이다. 그런데 주최사인 경향신문사 사정으로 중단되었다가 2년 수개월만에 재개되어 서9단으로서는 감회가 남다를 법하다. 그래서 더욱 애착을 가지고 신들린 듯이 싸우는 것일까.
『3년 가까이 중단되었기에 망정이지 계속되었다면 조훈현은 물론 유창혁·이창호 등쌀에 벌써 타이틀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참새들의 입방아가 서9단을 자극, 분발의 계기가 되었음직하다.
때는 바야흐로「이·조 시대」라지만 서9단은「순국산」이라는 애칭으로 조9단과 함께 인기순위 1, 2위를 다투며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말까지 10여년간「조·서 시대」를 펼쳤던 한국 프로기단의 큰 별이다. 비록 조9단의 위세에 눌려 2인자의 위치였을 망정 그의 팬들은『뭐니뭐니 해도 조훈현을 꺾을 사람은 서봉수 뿐』이라며 성원을 보냈고 서9단도 심심찮게 타이틀을 빼앗아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곤 했다.
90년대 들어 유창혁·이창호 두 영 파워의 득세로 시련을 겪었으나 심기일전, 국제무대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리는 한편 조훈현 콤플렉스에서도 완전히 벗어나는 등(금년 전적 5승1패)「순국산」의 진가를 다시 빛내고 있다.
요즘 서9단은 컨디션이 매우 좋은 듯 평상시에도 여유가 넘쳐흐를 뿐만 아니라 대국 내용 또한 서두르지 않는 느긋한 운영으로 차원 높은 바둑을 두고 있어 주목된다. 이러한 서9단의 상승세는 3주 후에 치를「제2기 응씨배」준결승의 전망을 한층 밝게 해준다. 『작은 것더러 이긴게 뭐 대단합니까. 큰 것을 이겨야지요.』서9단도 40만 달러 상금의「응씨배」에 대한 집념을 은연중 내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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