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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쪼아 그림 그리기 10년|상주 함창읍 권창희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한 농민이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듯 돌 위에 동·서양화, 사군자를 마음대로 그리고 병풍도 만드는 미술분야의 새로운 장르인 석화를 개발해 화제.
농민 석화 조각가 권창희씨(35·경북 상주군 함창읍 구향3리120)는 아직까지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그래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석화만을 10년째 그리며 혼자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 창조적인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가고 있다.
물론 긍지도 대단하다.
권씨가 쓰는 기초재료는 돌 중에서도 질이 단단한 오석(검은 돌).
도구는 돌을 미세하게 쪼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수십 가지의 정과 망치 외에 그라인더로 돌을 갈 때 날아오르는 분진이 눈과 호흡기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물안경과 마스크가 전부.
오석은 충남 대천지방에서만 나오는 질감이 좋으면서도 질이 단단한 돌로 가로 50㎝, 세로 70㎝, 두께 5㎝ 정도의 크기로 무게는 20㎏정도.
그러나 이 같은 크기의 돌은 제작방법에 따라 대형작품도 만들 수 있고 사군자 등으로 병풍을 만들기도 하며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믿는 어해도도 그릴 수 있다.
권씨가 지금까지 그린그림은 1백70여점.
이중 특히 볼록 형태의 양각기법으로 그린 그림은 종이에 붓으로 그린 듯 섬세하면서도 중량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제작한 그림은 지금껏 한 점도 팔지 않았다.
다만 지난해 4월 상주 문화제에 특별 전시한 50점이 일반에 최초로 공개됐으며 친구 등의 권유로 지난해 10월 사군자를 서울 현대미술대상전 공예부문에 출품해 입상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작품은 피나무로 만든 표구에 넣어 창고 깊숙이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돌이 살아 숨쉬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아마 믿지 않을 겁니다. 돌과 친화력을 갖고 호흡하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절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권씨가 이같은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77년 고교를 졸업한 뒤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던 중 당시 상주지방에서는 석공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던 매형 이정부씨(84년 42세로 작고)를 따라다니면서 돌 다루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돌을 파 글자를 새겨 넣는 음각의 비문을 만드는 일만을 배우다 문득 양각의 글씨도 써보고 그림도 그려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된 것이 결국 따지고 보면 창작의 혼이 돋아 난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비석으로 쓰이는 강한 재질의 오석에 양각작업을 시도하다 값비싼 돌을 많이 깨뜨리기도 해 매형으로부터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꾸지람을 많이 듣기도 했지요.』
이후 군복무를 마친 권씨는 83년부터 스스로 터득한 석화의 창작기법을 살려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으나 1년 뒤 매형이 갑자기 숨진데 이어 형님마저 타계하는 불운이 겹친데다 졸지에 부모와 누님·형님댁·자신의 가족 등 모두 14명 대식구의 생계문제 해결을 위해 논·밭 3천여평의 농사일에 매달리느라 한때는 이를 포기해야 할 상황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권씨는 석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농한기의 틈을 이용, 빈 창고에 작업장을 만들고 이에 몰두하다 부모와 친척들로부터『그림을 그린다고 돈이 나오느냐』는 핀잔과 함께 망치와 정으로 돌을 뜯어 낼 때 나는 소리 때문에 동네주민들로부터『시끄러워 못살겠다』는 항의를 듣기도 했다.
이제 어느 정도 주위의 따뜻한 이해와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권씨는『스스로 작품세계가 완성되었다고 생각될 때 대구 지하철 벽화를 만들어 기증하고 싶다』며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예술 혼을 불태우고 있다. 【대구=김선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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