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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소동」이 남긴 교훈(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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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주장했던 「휴거」의 날 10월28일이 큰 불상사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중재림도 없었으며 휴거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휴거를 기대했던 신도들에게는 실망이 컸겠지만 이 기회에 터무니 없는 교리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무모하고 허망한 것인가를 깨달았다면 좋은 교훈이 됐으리라 믿는다.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이란 이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최후의 심판이다. 현세의 믿음과 선악에 상응하는 사후의 화복을 약속하는 것은 동서고금에 차이가 없는 일반적인 종교교리의 공통된 내용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의 섭리에 의해 역사 하는 것일뿐 인간의 힘이나 지혜의 영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이 언제 일어날지는 하느님만 아실뿐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 시기를 예측한다는 것은 이단적인 행동으로 정통교단은 보고있다. 이번 휴거의 불발로 해서 시한부 종말론이 성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요,기독교 교리의 왜곡임이 실증된 셈이다.
특정 종교집단의 이러한 왜곡된 신앙이 초래하는 사회적 영향은 실로 막심하다. 비록 극히 일부에 국한되는 것이긴 하지만 수천명의 신도가 가산과 생업을 정리하고 가정을 버렸으며 재산을 교회에 헌납하는 등 부작용이 잇따랐다. 치안당국의 면밀한 대처로 「휴거」당일에 예상되던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일이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생업을 잃었거나 가산이 결딴나고 가정이 파괴된 신도들에 대해서는 이들이 정상적인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급하다. 또한 고의적이건,혹은 스스로가 오류에 빠졌건간에 이들 무고한 신도들을 신앙적으로 오도하고 혹세무민한 책임자들에 대한 엄중한 문책도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 기회에 이 시대에 우리에게 종교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생각해 본다. 어느시대,어느사회건 광신적인 주술신앙이나 기복신앙 집단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첨단과학문명이 지배하는 후기산업 사회에서의 종교란 각자가 스스로 선택한 신을 믿음으로써 현세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선을 실천하여 현세의 화평과 내세의 구원 및 영생을 추구하는데 그 의의와 존재가치를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종교는 개인의 행복은 물론 사회의 평화와 안녕에 기여하게 된다. 내세의 복락만을 위해 현세의 일체를 포기하거나 사회안정을 해치는 신앙은 종교적 신앙이 아니라 이기주의적 광신일 뿐이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주술신앙이나 기복신앙의 극복을 위해서는 기성정통 교단이 이들에게 종교적 갈망을 충족시키고 안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사회정의가 실현되고 올바른 가치관이 확립돼 국민들이 정신적으로 황폐화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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