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가경제성장의 원동력 수도권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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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역균형개발이 "실효성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세계 각국의 도시학자들이 지적했다.

12일 숭실대 사회과학연구원이 주최한 '국가균형발전정책에 관한 국제세미나'에서 미국 사우스캘리포니아대 해리 리처드슨 교수는 "영국의 경우 이제 지방분산 정책보다는 런던을 성장엔진으로 만들어 그 과실을 지역에 배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면서 "영국이 다시 서유럽의 경제 중심지로 떠오른 배경은 런던의 도시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베르트랑 르노 세계은행 수석연구원은 "역동적인 수도권은 국가 전체 경제 성장의 동력"이라고 지적했다. 이치가와 히루 일본 메이지대 교수는 "일본이 수도이전 계획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도쿄의 경쟁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여전히 행정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이전을 위한 혁신도시 건설 등 지역균형개발에만 목을 매달고 있다. 한편 수도권은 각종 규제로 인해 투자가 어렵고 산업의 생산성 저하가 두드러지고 있다. 그렇다고 기업들이 지방으로 옮겨 간 것도 아니다. 규제가 없거나 투자나 산업입지가 용이한 외국으로 나가버린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수도권의 경쟁력을 강조하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들의 조언이나, 글로벌 도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세계적 트랜드를 아예 무시하기로 작정한 듯하다. 세계도시들 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도권의 경쟁력 약화는 국가 전체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것은 이미 여러 학자들이 실증적으로 제시하는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그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는 12일 숭실대 세미나에서 제시된 "행정도시는 규모를 축소해 과학연구단지 등으로 용도를 바꾸고 나머지 토지는 개발유보지로 지정해 단계적으로 개발하는 한편 공공기관의 일률적인 분산은 재고해야 한다"는 학자들의 지적을 겸허하게 되새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