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법 선거운동 중단하라(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들이라면 불법은 물론 탈법을 해서도 안되고 「탈법성」이란 시비가 일 언동을 해서도 곤란하다. 그 만큼 의심받지 않을 도덕성과 준법의 모범을 보일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각 정당의 대통령후보들이 연일 벌이고 있는 행사를 보면 이들이 법으로 금지된 사전선거운동을 탈법적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당원결의 대회니,지구당대회니 하는 정당활동의 명목으로 행사를 하는 것도 사실상 탈법선거운동이지만 그래도 이것은 법이 허용하는 통상의 정당활동이라고 치자. 그러나 이런 정당활동에 이어 시장을 누비고 다수의 유권자들을 접촉하면서 즉석에서 공약을 제시하는 행위는 어떻게 볼 것인가. 심지어 「정당활동」이란 그나마의 명목도 갖추지 않은채 바로 유권자를 접촉하고 민박까지 하는 선거운동이 벌어지는 판이다.
대선이 임박해 옴에 따라 후보들의 바쁜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대통령후보라는 체통을 생각해서라도 이런 탈법적 선거운동을 해서야 되겠는가. 하기야 유권자를 접촉하되 「지지해달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위법이 아니라는 해석도 있는 모양이지만 후보들이 이렇게 구차한 법해석을 하면서까지 지금부터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지 보기에 민망하기 짝이 없다.
후보들이 앞장서서 이런 사전선거운동을 벌임으로써 벌써 대선의 조기과열이 우려되고 있다. 사실상 지방유세를 하는 것 말고도 각 정당은 후보에 관한 각종 책자·만화 등을 대량 배포하고 신문에 연일 대형광고를 게재하고 있다. 이런 일들은 모두 엄청난 비용이 드는 것인데 이러고도 후보마다 입만 열면 말하는 「깨끗한 정치」「돈 안드는 선거」가 이뤄질 것인가. 후보와 정당들의 이런 이중적 행태 때문에 정치권이 국민의 불신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권이 대통령선거법 개정에 늑장을 부리고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모처럼 선거혁명을 해보자고 중립내각까지 들어서고 후보들 역시 정치개혁을 부르짖으면서도 공명선거와 돈 적게 들 선거를 가져올 필수적인 법 개정에는 웬일인지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새 법은 안 나오고 고치기로 돼있는 현행법으로는 단속하기도 어정쩡한 사실상의 법부재기간이 계속되는 판이다. 정치권이 일부러 이런 모호한 기간을 끌면서 탈법운동을 한다고는 보지 않지만 선거운동을 규제할 대선법 개정을 적극 서둘러야 마땅하다. 그리고 중립정부로서는 현행법도 엄연히 법인 만큼 가차없이 법 집행을 해야 한다. 이번 내각이 들어선 까닭이 뭔가. 이런 일을 주저하거나 나약하게 예외를 두어서는 결코 안된다.
후보와 정당들은 자기들에게 쏠리는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해서라도 성급한 탈법운동은 중단하기 바란다. 모처럼 열린 국회는 텅텅 비도록 소속의원들을 대거 거느리고 탈법소리를 들어가며 선거운동을 해서야 되겠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