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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리빙] 골 깊은 청계산 응달말, 600년간 녹여온 곰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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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전주 최씨 가문의 종부 박일채(99.(中)) 할머니와 아들 부부인 최종수.조용기씨 내외가 웃고 있다. 조씨는 시어머니 박씨로부터 배운 고기완자탕을 특별한 손님이 왔을 때마다 내놓는다고 한다.

박일채(99) 할머니는 경기도 과천에서 600여 년을 살아온 전주 최씨 가문의 종부다. 박 할머니의 장수 비결은 아들 최종수(67) 과천문화원장의 아내 조용기(67)씨가 지극 정성으로 만들어 올리는 음식이다. 44년간 시어머니 밥상을 차린 며느리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올렸던 '장수식품'은 꼬리곰탕.사골곰탕.양탕 등이다. 음식을 제대로 씹을수 없게 된 지난해부터는 사골 국물과 일곱 가지 죽으로 노인의 건강을 챙기고 있었다.

"제가 시집왔을 때 종가는 지금의 서울대공원 식물원 자리에 있었습니다. 골 깊은 청계산 자락 음지에 있어 '응달말'이라고 불렸지요. 해가 일찍 떨어지니 겨울엔 몹시 추웠습니다. 그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인지 조상 대대로 곰탕을 즐겨 드셨다고 합니다." 조씨의 설명이다.

박 할머니는 3년 전부터 치매가 오긴 했지만, 뼈를 튼튼히 하는 곰탕 덕분인지 허리도 굽지 않았고 걷는 데도 별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고관절 수술을 받은 후부터는 워낙 고령이라 거동을 못하고 누워 있다. 그런 시어머니를 돌보느라 며느리는 외출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지만 간병인을 따로 두지 않았다. 자신이 모셔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천사표' 며느리의 효성은 이뿐 아니다.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자리보전을 했을 때 3년간 대.소변을 받아냈다. 일 많은 종가살림 틈틈이 어려운 이웃 노인을 돌본 선행이 알려져 1975년에는 효부상을, 91년에는 과천시민 대상을 받았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시부모 모시는 건 당연한 일인데 상을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자식들은 밥을 먹으면서 어머님은 죽을 드시도록 할 수밖에 없는 불효가 오히려 죄송스럽습니다. 그래서 죽을 끓일 때는 반드시 찹쌀을 넣어 진득하게 합니다."

종부가 개발한 일곱 가지 죽을 맛봤다. 사골을 푹 고아 기름기를 없앤다. 김치를 씻은 뒤 곱게 다져 참기름에 볶다가 곰국을 붓고 찹쌀을 넣어 끓인다. 이렇게 끓인 김치죽은 씹지 않아도 목에 걸리는 게 없고 맛이 깔끔했다. 사골 국물에 삶은 호박과 불린 찹쌀을 넣고 끓인 사골호박죽도 별미였다. 사골에 우유를 섞어 찹쌀을 넣고 끓인 사골우유죽은 어린이 이유식으로도 훌륭할 듯싶었다. 잣죽.전복죽.된장죽.아욱죽.대추죽 등을 끓일 때도 사골 국물이 물을 대신해 영양을 보충했다.

"어머님은 과일에다 꿀을 섞어 조린 과실정과를 잘 드십니다. 정과는 '귀신 쫓는 음식'이라고들 하잖아요. 맛이 좋기 때문이지요. 죽과 함께 드실 반찬으로, 사과와 배를 강판에 갈아 꿀을 섞어 소금을 조금 넣은 뒤 은근히 조린 사과 정과를 올립니다. 감.귤.수박.딸기 등에 꿀을 섞어 조리면 정과가 됩니다. 물리실까봐 여러 가지 정과를 만들어 두고 끼니마다 다르게 올려요."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서 배운 음식은 고기완자탕이라 했다. 고기를 곱게 갈아 두부를 섞어 둥글게 빚은 완자탕은 특별한 손님이 왔을 때 올렸던 음식이라 한다. "부지런하시고 음식을 잘 드시는 게 시어머님의 장수 비결이 아닐까 해요. 특히 고기류와 단 음식을 좋아하시는데도 고혈압.당뇨병 같은 성인병이 없으십니다." 요즘 유행하는 '웰빙식단'도, 특별한 보양식도 아닌 가족 사랑의 온기와 정성이 깃든 밥상이 인상적이었다.

한배달우리차문화원장

■ 사골김치죽

◆재료(4인분) - 사골국물 7컵, 불린 찹쌀 1컵, 김치 200g, 참기름 1큰술, 소금 2작은술, 청장 약간.

① 찹쌀은 하룻밤 불린 뒤 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뺀다. ② 김치는 양념을 털어낸 다음 물에 헹군 뒤 꼭 짜서 곱게 다진다. ③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다진 김치를 볶다가 불린 쌀을 넣어 볶은 뒤 사골국물을 붓는다. 센 불에서 끓어 오르면 은근한 불에 쌀알이 힘없이 푹 퍼지도록 주걱으로 저어가며 끓인다. 소금과 청장으로 간을 한다.

■ 쇠고기 완자탕

◆재료(4인분) - 쇠고기(장국용)100g, 물 7컵, 국간장 3큰술, 완자용 쇠고기 100g, 두부 30g, 밀가루 4큰술, 달걀 1개, 소금, 깨소금, 실파, 참기름 약간씩 . 고기양념 - 소금, 다진 마늘, 참기름, 깨소금 각각 1작은술, 다진 파 2작은술, 설탕, 후춧가루 약간 . 두부양념 - 소금, 다진 마늘, 참기름 1작은술씩, 다진 파 2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① 장국용 쇠고기는 납작납작하게 썰어서 물을 부어 맑은 장국을 끓인다. 고기는 건져내고 국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② 완자용 쇠고기는 곱게 다지고 두부는 으깨어 물기를 꼭 짠다. ③ 다진 고기에 고기 양념을 넣고 무친다. 으깬 두부에 양념을 넣고 무친 후 고기양념과 두부양념을 한데 섞어 치댄다. ④ 양념한 고기는 지름 1~2㎝ 크기로 둥글게 빚고 달걀은 소금을 넣고 푼다. ⑤ 완자는 밀가루를 충분히 묻힌 다음 털어내고 달걀물에 담갔다가 펄펄 끓는 장국에 넣어 떠오를 때까지 끓인다. 먹을 때 송송 썬 실파나 달걀 황백지단으로 고명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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