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임금협정 다시 맺으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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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의혹으로만 떠돌던 택시노조 교섭위원 매수사건은 경찰의 조사로 다행히 진상이 밝혀졌다. 노사협상 때마다 교섭위원을 매수해서 사용자측에 유리하게 협정을 맺어왔다는 항간의 의혹이 최소한 올해는 사실로 입증된 셈이다.
우리가 지난 4년여의 노사분규를 거치면서 검증하고 얻어낸 소중한 교훈이 있다면 노사간의 협약이란 음해 또는 매수방식의 전근대적 공작차원으로는 결코 풀어갈 수 없다는 경험이었다.
이런 소중한 경험과 교훈이 시대분위기로 정착되었음에도 택시업자쪽은 아직도 노사협상과정에서 노노갈등을 조장하고 교섭위원 매수라는 낡은 음해공작을 그대로 사용했다. 또 운전자쪽은 이를 빌미삼아 차량반납시위를 벌여 도심의 교통을 혼란에 빠뜨리고 시민의 발을 묶는 피해를 주기도 했다.
우리는 택시업 자체가 지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도 많다고 본다. 교통체증으로 인한 수입의 감소와 비현실적인 요금정책,인력의 부족과 급료의 인상에 따른 경영의 압력 등 업계내부의 어려운 사정도 산적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어려운 업계사정이 있다면 우선 어려운 형편을 소상히 밝히고 내부의 일치된 화합분위기를 일구는 쪽으로 사용자측이 노력했어야 한다.
시민생활과 직결된 택시업계가 당면한 구조적 문제를 풀어나가야할 방향은 운전자의 완전 월급제와 택시요금의 현실화에 있다고 본다. 당장 완전월급제가 아니더라도 단계적 과정을 거쳐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하고 시민의 편의를 위해서도 세계에서 가장 싼 택시요금은 단계적으로 인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 택시 노사협정은 월급제가 아닌 성과급쪽으로 후퇴했고,줄어들어야할 사납금은 인상되고 성과급마저 작년수준 보다 줄어드는 해괴한 협정이 되고 말았다.
성과급이란 운전자의 생계를 보장하지 못할 뿐아니라 일당을 벌이기위해 무리한 과속과 합승을 함으로써 도시교통의 혼란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시민전체의 안정을 위해서도 월급제는 성사돼야 할 목표인 것이다. 이는 노동부의 택시기사 월급지침과도 같은 방향이다.
따라서 교섭위원을 매수해서 체결한 92년 서울택시임금협정은 원인무효로 돌려야 하고,택시업계는 전혀 새로운 자세로 새 협정을 맺는 진지한 노력을 다시금 보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노사 양쪽에 똑같은 주문을 하고 싶다. 택시업계가 당면한 현안을 푸는 길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로서는 불가능하다. 업주쪽의 부도덕성을 내세워 이번엔 운전자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정을 체결한다고 택시업계의 사정이 호전될 것도 아니다. 업계내부의 어려움과 이를 풀어갈 방향 설정에서 서로의 입지를 감안한 양보와 화해를 통해 시민들도 공감할만한 해답을 함께 얻어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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