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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수출의존형 한국, 세계화 벗어날 수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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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경제 위기가 다시 찾아 온다면 그 진원지는 미국과 동아시아가 될 것이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영철(사진) 교수는'한국 경제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주제발제를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박 교수는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 때문에 글로벌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세계 경제가 극심한 불황을 겪거나 금융 시장이 붕괴되는 등 커다란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주택과 주식 등 자산가치가 급등하면서 이미 거품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총외채는 2006년말 현재 2600억 달러를 넘어섰고 단기외채는 1100억 달러를 웃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경제 불황 등 부정적인 외적 요인이 가중되면 우리나라도 경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 의존적인 경제구조로 인해 세계화 추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선택할 수 있는 경제 운영의 틀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우리 경제는 시장경제가 주축인 영.미형 제도를 근간으로 하면서 세계화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한 혼합식 모델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같은 모델을 정착시키기 위한 조건으로 ▶작지만 일 잘하는 정부 ▶수출과 내수가 균형 발전하는 성장 전략▶정부 개입이 배제된 자율적인 노사관계▶글로벌 수준의 재벌 규제 완화▶재정의 건전화▶글로벌 네트워크 강화 등을 꼽았다.

재정·조세·금융 부문
고령사회 대비한 투자 민간자본 나설 때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재정 건전성이 악화돼 1997년과 같은 위기가 다시 찾아온다면 재정정책을 통해 이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창용 교수(서울대 경제학과)의 주장이다. 이 교수는 "향후 인구 고령화로 인해 복지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며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복지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재정투융자 사업에 민간자본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민간자본이 투자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을 활용한 금융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재정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재정투융자정책과 복지정책을 차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중소기업을 지원할 때 한계기업이 아닌 유망 기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망 중소기업을 통한 고용창출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자금조달을 맡고 민간 금융기업들이 지원 대상 기업을 선정하는 방식이 적합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이영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평균에 비해 우리의 개인소득세는 다소 낮고 법인세는 비슷하며 재산세는 높은 수준"이라고 진단하고 "조세정책에서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원칙을 적용해 초과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전체 세수 중 소득세 비중을 소폭 높이고 법인세는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법인세 인하는 세율 인하, 감가상각제도 개선, 투자세제 개선 등을 통해 실행해야 한다"며 "또 부동산 세수 규모를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부동산 세수의 경우 거래세를 낮추고 보유세를 올리는 세목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소득세의 경우 감면과 공제로 인해 과세대상이 전체 납세대상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며 "향후 납세대상을 확대하고 소득세 공제항목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함준호 교수는 은행과 자본시장이 연계되는 금융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의 저축 결집 기능과 자본시장의 위험 흡수 및 분산기능을 결합해 금융 중개기능을 최적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금융기업의 대형화.그룹화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금융감독기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며 "또 금융그룹 단위로 건전성을 규제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연결감독체제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관련 금융에서도 일회성 지원에서 벗어나야 하며 은행 일변도의 금융재원 배분 체제도 바꿔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그는 "공적보증의 경우 중소기업이 창업을 하거나 초기 성장단계에 있을 때 집중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함 교수는 자본시장통합법이 금융 서비스의 기반확대에 기여하겠지만 증권사가 지급결제기능을 갖는 것은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역·환율·대외경제 부문
미·EU와 교역늘려 중국발 위험 줄이자

외환위기 이후 무역 부문에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김종섭(서울대 국제대학원).박태호(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외환위기 직전에 대(對) 중국 수출 비중은 9%에 불과했으나 2005년에는 21.8%로 늘었다"며 "중국의 경기 상황에 따른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미국과 유럽연합(EU)과의 교역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중국시장이 한국의 총수출액을 매년 1.7%씩 증가시킨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제3국 시장에서 중국 제품의 저가공세로 인해 우리 수출이 연 1.5%씩 잠식당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들은 또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폭 증가한 외환보유고를 해외투자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원-엔 환율 변동이 우리 기업들에게 주는 영향이 외환위기 이전보다는 덜 하지만 자동차.기계 등의 수출 주력 업종에선 아직도 환율에 따른 충격이 크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경제학과 신관호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인플레이션이 연 3%를 약간 웃도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이같은 낮은 인플레이션은 통화정책이 성공했다기보다는 국내의 수요 부진과 지속적인 환율 절상, 중국의 저가품 유입 등 환경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정부가 환율 절상을 저지하는데 많은 비용을 지불했지만 단기적인 효과밖에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SK경영경제연구소 왕윤종 경제연구실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만병통치약이 아니라고 전제한후, 관세인하 등을 통한 해외시장 진출 확대와 국내 산업의 경쟁력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초 한미 FTA를 기반으로 국내 서비스산업의 고부가가치 창출을 꾀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강조했다.

왕 실장은 "FTA를 기반으로 한 경제 개방이 선진 경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FTA에 인한 취약 부문에 대한 지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이뤄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 분야의 규제 개혁과 동시에 소규모 영세농을 묶어 영농법인이나 조합으로 대형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익재 기자<ijchoi@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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