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상황에 발목잡힌 「UR협상」/미­EC 타협점 못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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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농업 보조금문제 결렬 서로 떠넘겨/한국측 미­EC와 「양자협상」 큰부담
미국과 유럽공동체(EC)간의 농산물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UR(우루과이라운드)협상의 연내 타결은 극적인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한 사실상 무망해졌다.
미국과 EC는 지난 17∼18일 캐나다에서 열린 통상회담에서 그동안 UR협상의 타결을 가로막아온 가장 큰 요인인 농업보조금 문제해결에 중대한 진전을 보아 「빠르면 수일내에 합의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이례적인 폐막성명을 발표하는 등 UR협상의 조기타결에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었다.
그러나 금주초 브뤼셀에서 열린 미·EC간 농업협상이 농업보조금 문제에 대한 양측의 타협점을 찾는데 실패,서로 상대방에 협상결렬 책임을 전가하는 양상으로 전개됨에 따라 지난 6년간 끌어온 UR협상의 연내타결은 물론 장래 전망까지 극도로 불투명한 상황으로 뒤바뀌었다.
「미국과 EC의 농산물협상이 타결될 경우」 11월중에 제네바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UR협상 타결을 위한 다자간협상도 결국 무산됐다.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EC통합,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체결 등 심화되고 있는 지역주의에 대응키 위해서는 UR협상의 조기타결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 대단히 우려할만한 상황전개다.
물론 일각에선 이번의 미·EC간 협상결렬로 우리의 쌀시장 개방문제가 전면에 노출되지 않게 됐다는 점을 다행스러워 하기도하나 대외교역비중이 높은 우리로서는 자유무역의 지지기반으로서 UR협상의 조기타결과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의 기능회복은 매우 절실한 과제다.
미국과 EC간의 농업분야를 둘러싼 협상의 진전,또는 결렬은 이들의 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11월3일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현저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미국의 부시행정부는 선거전 UR협상의 타결을 통해 상황반전을 꾀하려는 목적을 갖고 상당수준의 양보를 감수해가면서 협상을 급진전시켰으며 EC로서도 이같은 부시행정부의 「약점」을 노려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낸다는 계산아래 이 협상에 적극적으로 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선거라는 정치적 목적이 개입됨에 따라 미국은 「EC가 캐나다 회의에서의 양보수준보다 오히려 후퇴함」을 이유로,EC는 「미국이 선거전 타결을 목표로 과도한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을 들어 결국 협상을 결렬시켰다.
UR협상의 조기타결을 희망해온 우리 정부로서는 이같은 사태진전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부진속에 심화되고 있는 경제의 블록화현상,관세·비관세 장벽의 강화,무역보복 조치 등 현재의 세계 무역환경은 악화되고 있다.
다자간협상이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 늘어날 수 밖에 없는,미국이나 EC 등을 개별 상대로한 양자협상은 교섭력이 약한 우리로서는 더욱 부담스러운 것이다.
UR협상은 「쌀시장 개방」만이 아닌 세계자유무역질서의 공통규칙을 만드는 것이고 우리로서는 이 문제가 다른 어느나라보다도 절실하다는데 UR협상지연이 갖는 불길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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