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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 20주년 (下) 첫 공식 기념일, 달라진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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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6월 민주항쟁 20년 민주주의 시민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공연단과 함께 줄을 잡고 대동놀이를 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시민 2만여 명이 참가했으며 주먹밥 만들기, 중.고생 댄스공연, 인기가수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축제가 펼쳐졌다.[사진=김성룡 기자]


9일 오후 8시 서울시청 앞 광장. 폭죽이 터지는 무대로 록밴드 크라잉넛이 올랐다. 빠른 리듬의 음악이 울리자 광장은 이내 관중 5000여 명의 열기로 가득 찼다. 이 무대는 6월항쟁 2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열린 '민주주의 시민 콘서트'. 9~10일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가 주관한 20주년 기념행사들은 전국에서 15만여 명이 참가했다. 투쟁 일색이던 예년과 달리 청소년과 시민이 동참하는 문화행사가 주류를 이뤘다.

◆'격전지'가 축제장으로=6월항쟁의 격전지 중 하나인 서울시청 앞 광장은 이날 밤 '즐거운 추모'가 이어졌다. 크라잉넛과 여성 4인조 발라드그룹 빅마마에 이어 가수 심수봉이 무대에 올랐다. 심씨가 '사랑밖엔 난 몰라' '백만송이 장미'를 부르자 중년층까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호했다. 대중적인 가수들 사이로 '광야에서'로 유명한 안치환의 공연이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축제는 관객들이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는 강강술래와 기차놀이로 끝났다.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6월 기념행사여서 민중가요 일색일 거라는 추측은 완전히 어긋났다. 8세 된 아들과 함께 공연을 즐기던 심상대(44.공무원)씨는 "이런 행사에서 꼭 운동권 노래를 들으라는 법은 없다"며 "이렇게 다양한 가수들이 나와 즐길 수 있는 게 민주화가 주는 행복 아닌가"라며 기뻐했다. 무대에 섰던 안치환씨는 "그날의 함성을 기억하는 자리가 꼭 엄숙할 필요는 없다"며 "한바탕 신명나게 놀고 추억하는 자리여서 좋다"고 평가했다.

행사를 기획한 김종환(41)씨는 "6월항쟁이 성별과 직업, 나이를 뛰어넘은 국민 항쟁이었던 만큼 기념행사 역시 남녀노소에게 즐거움을 주는 '잔치'로 만들고 싶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낮 12시에 시작한 '어린이 난장'도 축제 분위기로 진행됐다. 6월항쟁을 기념하는 창작극과 사진전이 벌어졌다. 광대로 분장한 자원봉사자들은 잔디밭을 뛰노는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눠줬다. 무대 한쪽에선 중.고생들이 힙합 댄스를 공연하며 기량을 뽐냈다. 이날 하루 2만여 명의 시민과 가족들이 나와 문화행사를 즐겼다.

◆첫 공식 행사=올해는 6.10항쟁이 처음으로 공식 기념일로 지정돼 의미를 더했다. 10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선 '6.10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이 기념식에 참석했다. 1987년 명동성당에서 농성자들의 빨래와 음식을 도왔다는 강영주(68.당시 철거민)씨는 기념식에 참석한 뒤 "경찰에 끌려가는 시위대를 '내 아들'이라고 우기며 데리고 나오던 때가 생각난다"고 회고했다.

이날 오후엔 서울시청을 출발, 명동성당까지 6월항쟁 당시 시위행렬을 재연하는 행사에는 시민 1000여 명이 참여했다. 한 참가자는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웃통을 벗고 대형 태극기를 휘날리며 달려 6월항쟁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을 재현했다. 넥타이부대와 학생.상인으로 분장한 참가자들은 "독재 타도, 호헌 철폐"라는 당시 구호를 외쳤다.

박수를 치며 지켜보던 임성석(52.자영업)씨는 "'호헌 철폐' 구호를 들으니 20년 전 시청 앞 시위대에 뛰어들었다 최루탄에 시달렸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이룬 민주주의인 만큼 모두가 하나 되는 축제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기헌.송지혜 기자

386 이후 세대는 … "6월항쟁·이한열 ? 잘 몰라요"

"이한열 열사요? 고문 받다 죽은 사람 아닌가요."

"포털 검색 1위로 오르긴 하던데… 솔직히 잘 몰라요."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을 지나가던 10대들의 반응이다. 6월항쟁 20주년 축제가 한창이었지만 '포스트 386' 세대들에게 '6.10항쟁'은 생소했다. 친구들과 행사장을 찾은 노성복(17.경복고)군은 "교과서에서 막연히 독재에 맞선 운동이라고 읽은 적은 있지만 누가 무엇을 위해 한 일인지는 모른다"고 털어놨다.

대학생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고려대.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 학보사가 공동으로 대학생 1089명을 대상으로 6월항쟁에 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김주열(1960년 3.15 부정선거 시위 중 사망).이한열(87년 6월 9일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사망) .박종철(87년 경찰의 고문치사 희생자).전태일(70년 분신 자살)씨 중에서 6월항쟁과 관련 있는 인물을 고르라'는 질문을 던졌다. 제대로 두명을 모두 고른 학생은 10명 중 1명에 그쳤다. 6월항쟁에 대해 '잘 안다'는 응답은 7.5%에 그쳤고, '대략 안다'는 응답도 36.6%에 불과했다. 연세대를 제외하곤 학생회 차원의 기념식도 거의 없었다.

386 세대 이후 젊은 층이 6월항쟁에 대해 무관심하게 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대사 교육의 공백을 지적한다. 국사 교사인 김성은(45.부산 대연고)씨는 "국사 교과서에서 6월항쟁과 민주화운동에 대한 언급이 단 석 줄에 불과해 사실상 학생들이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다"고 설명했다.

민주화운동 세력이 자초한 일이라는 지적도 있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대 학장(사회학)은 "민주화운동 세력들이 87년 이후 제각기 '6월 정신의 계승자'로 자처했다"며 "그들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이 쌓이면서 항쟁 자체가 평가절하된 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학)는 "지도부 상당수가 정권의 핵심으로 진출해 보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6월 항쟁의 정당한 평가를 가로막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유미.김경진 기자<yumip@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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