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페스토 운동의 핵심은 포퓰리즘 후보 막자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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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자와 시게후미(松澤成文.49.사진) 일본 가나가와현 지사는 2003년 4월 지방선거에서 매니페스토 바람을 일으켰다. '원조 매니페스토'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이다.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그는 중앙당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던 자민당.사민당 후보와 맞서 유권자들에게 37개 항에 이르는 '매니페스토 공약집'을 제시해 최연소 지사로 당선됐다.

2006년 4월에는 재선에 성공했다. 이때도 11개 항의 '가나가와현 선진 조례 제정'을 매니페스토 공약으로 내세워 200만 표를 얻었다. 2위에게 140만 표 차로 압승했다.

마쓰자와 지사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고현철),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공동대표 강지원), 내나라연구소(소장 김영래)가 주최하고 중앙일보.SBS가 후원해 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매니페스토와 정책선거 발전 방안' 국제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매니페스토는 깨어 있는 유권자가 시류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후보를 막는 견제 장치"라고 평가했다.

-매니페스토 공약이 본인의 당선에 크게 작용했나.

"그렇다. 예컨대 2002년 가나가와현의 범죄 검거율은 19.2%에 불과했다. 그래서 '4년간 경찰 1500명 증원'을 유권자에게 제시했다.

2002년 선거 때 자민당 후보는 당에서 사무실까지 지원받았지만, 나는 혼자 뛰며 매니페스토 공약에 집중했다. 당시 언론과 정치권 모두 판세를 격전으로 예상했지만 유권자들은 매니페스토 공약을 신선하다고 평가해 줬다.

올 4월 가나가와현 범죄 검거율은 38.6%로 개선됐다. 연임 성공엔 이 같은 공약 실천이 작용했다."

-매니페스토 운동의 핵심은 뭐라고 보는가.

"포퓰리즘에 기대는 이들을 막는 견제 장치다. 매니페스토 운동이 활성화되면 순간적인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방식으론 선거를 치를 수 없다. 예컨대 일본에선 개그맨이 도지사에 당선된 적이 있다. 이분들은 연임하지 못했다. (정책보다) 대중적 지명도에 의존한 결과였다고 본다."

-매니페스토 운동이 당선 뒤에도 도움이 되는가.

"나는 2003년 선거 때 1인당 매년 1000엔씩 더 낸다는 증세 공약을 내걸었다. 증세 공약을 제시하고 당선됐기 때문에 현내 수질 개선을 위한 목적세 신설에 저항이 작았다."

-대선을 앞둔 한국의 경우 한나라당은 '빅2'의 검증론으로, 범여권은 정국 재편 등으로 정책 선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 대선에 대해 내가 뭐라고 말하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각 정당이 후보를 내기 위해 검증이나 정계 개편을 겪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또 후보를 선출하는 당내 예비 선거에선 본선에서보다 정책적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다. 실질적인 정책 대결은 본선이다. 정책을 매니페스토 형식으로 정리해 자신이 대통령이 됐을 때 미래를 어떻게 이끌 것인지 유권자들에게 보여주고 비교와 판단의 기회를 주는 본선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부탁의 정치→약속의 정치"=8일 학술대회엔 박원순 변호사, 오봉진 중앙선관위 정당국장, 유문종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과 기타가와 마사야스(北川正恭) 와세다대 교수, 소네 야스노리(曾根泰敎) 게이오대 교수 등 한.일 매니페스토 전문가들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기타가와 교수는 "유권자에게 표를 부탁하는 정치가 유권자와 약속하는 정치로 바뀌는 것"이라고 매니페스토 운동을 정의했다. 그는 또 "일본의 경우 최근 각종 선거 여론조사에서 '매니페스토로 (후보를) 선택했다'는 답변이 1위로 나올 정도로 매니페스토 운동이 정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진 논설위원은 "매니페스토 운동이 있었다면 '반값 아파트 공약' '행정수도 이전 공약' 등 과거 대선 공약의 실천 가능성을 철저히 따질 수 있었을 것"이라며 "매니페스토 운동 공약에 객관적 전문가로 참여해 유권자에게 안내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글=김정욱.채병건, 사진=김성룡 기자

◆매니페스토란=후보자가 공약을 발표할 때 목표.우선순위.절차.기한.재원 다섯 가지를 가능한 한 수치 형태로 구체적으로 제시해 유권자가 쉽게 검증하고 평가하게 하자는 참공약 선택 운동. 우리나라는 2006년 5.31 지방선거 때 처음 도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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