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다원주의」신념 재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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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이른바 종교 다원주의의 신학적 신념을 고수하면서 교단내 근본주의 전통과의 격렬한 맞부딪침 끝에 마침내 「총회결의에 의한 출교」란 막바지 벼랑에 까지 몰리게 된 전 감리교 신학대학장 변선환 교수의 30년 교단은퇴를 기념하는 논문집이 최근 출간됐다.
감리교 서울연회 재판위의 1심 출교 선고 직후 총회재판 위에의 상고도 포기한 채 학장 임기만료일인 지난 8월9일 학장직과 함께 한 학기 남은 강의까지 모두 거둬 은퇴를 선언했던 이 노교수를 위해 국내외 제자·동학 28명은 꼬깃돈을 모아 1년여 땀을 들인 『종교다원주의와 한국적 신학』이란 제목의 기념논문집을 상재, 19일 오후7시 정동감리교회 문화재예배당에서 출판기념회를 겸한 헌정식을 갖는다.
이번에 출간된 『종교다원주의와 한국적 신학』은 은퇴 노교수에 대한 상투적 의례의 산물만이 아니라 학문적 진실을 지키기 위해 기존의 틀과 온몸으로 싸우다 감리교 사상 유례없는 종교재판정의 피고석에 앉은 변 교수를 위해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학자들이 작성한 집단변론서의 의미를 띠고 있다.
「변선환의 신학세계」「종교다원주의와 신학의 과제」「다원화된 세계와 윤리적 실전」「한국사상과기독교신학」등 4부로 나누어 엮어진 이 논문집에는 홍정수·이정배·심광섭 등 변 교수의 손길을 거친 감신대 출신 후학들을 비롯해 안병무·김광직·김경재·M.A.토머스·W. 아리아라자 등 민중신학 및 대화신학을 대표하는 국내외 학자 등 총28명의 최근 논문이 실려 종교다원주의와 토착화신학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이번 『종교다원주의…』은퇴기념 논문집의 내용 가운데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변선환 교수의 신학적 궤적·전망을 다루고있는 제1부 「변선환의 신학세계」. 유년기 이후 80년대 초까지의 신학적 편력·사상을 자전적으로 기술한 변 교수의 「나의 신학수업」, 90년대 중반이후 변 교수의 신학적 변천을 살핀 심상태 교수(가톨릭대)의 「변선환의 타종교관」, 그리고 실존주의에서 서구화신학·감리교신학·아시아해방신학·종교다원주의·토착화론 등으로 이어져오고 있는 변 교수의 신학사상에 대한 총체적 평가로서의 「변선환 박사 신학의 평가와 전망」(좌담회)등을 줄거리로 엮고 있다.
변선환 박사를 고난의 역정 속으로 몰아넣은 소위 종교다원주의의 핵심은 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배타적 기독교 개종주의에 대한 반대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독교만이 절대라는 환상을 버리고 타종교와의 대화·공존을 위해 기독교를 상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변 교수는 이 종교다원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의 두 차례에 걸쳐 초기기독교시대 사이폴리안의 유명한 상징적 명제를 거꾸로 뒤집어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했다가 교단내 근본주의세력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최근 들어서는 마침내 사실상의 출교와 교직박탈이라는 개인적 불행을 겪어야했다.
그러나 「익명의 크리스천」이란 개념아래 타종교인들을 기독교 안으로 포용하려는 입장에서 점차 이 포용주의가 안고있는 기독교 우월주의의 속성을 깨닫고 『기독교도 많은 종교 가운데 상대적인 하나의 종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종교다원주의로 옮겨간 뒤 이를 국내 교계에 소개하고 열렬히 실천해간 변 교수의 신학에 대해 현재 많은 학자들이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는 점에서 변선환 신학은 전통 근본주의 신학과 또 한차례 파란의 승부를 필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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