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판 벌인 국감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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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과거 국정감사 때면 으레 일어났던 눈살 찌푸릴 일이 올해에도 또 나타났다. 국회 보사위의 일부 의원들이 경남 창원의 환경청을 감사하기 전날 피감기관 간부들과 어울려 술판을 벌여 현지 주민들의 빈축을 샀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흔했던 이런 병폐에 대해 사회와 의원들 자신의 경각심도 어지간히 높아진 만큼 설마 이젠 그런 일이 없으려니 했는데 이런 우리의 기대가 무너진 것이다. 관련 보사위 의원들은 술값은 자기네가 냈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도 이것이 국민이 바라는 국회의원의 국감자세일 수는 없다. 보도에 따르면 다음날 감사는 역시 이렇다 할 알맹이 없이 끝냈다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 이 일은 그저 있을 수 있는 에피소드로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올해의 지방국감을 놓고는 반대하는 지방의회와 국회간의 큰 마찰이 있었고,반대논거 중에는 바로 국감반의 이런 구태 재연가능성이 크게 꼽혔던 것이다.
보사위 창원감사와 같은날 서울시에서는 국감을 반대하는 시의원들이 감사장을 먼저 차지하는 등 실력행사를 벌여 내무위의 서울시 감사가 차질을 빚었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지방의회의 자치단체 감사를 찬성하지만 법개정도 되기 전에 시의원들이 이런 저지행동을 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방의원들이 보사위의 창원 술판을 보고 무슨 말을 하겠는가.
원래 대선을 앞둔 국정감사는 소홀해지기 쉬운데 올해 따라 정부가 중립을 선언하고 여야가 없어진 탓인지 더욱 소홀한 것 같다. 어제까지 집권당이던 제1당은 그렇다 치고 야당까지 중립정부의 환심을 사려는듯 감사에 힘을 내지 않는 인상이다. 국회가 일을 못한 기간이 너무 오랜데 비해 열흘이란 감사기간은 너무 짧다. 그럼에도 올해의 국정감사는 전반적으로 치열미가 떨어지고 국정의 문제점을 따지는 의원들의 열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감사 대상기관은 의욕적으로 대량 선정해 놓고 막상 감사에 임해서는 「격려」만 하고 끝내거나 피감기관장과 손발이 척척 맞는 문답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다.
국회건설위의 전남도 감사반의 경우 일정에 쫓겨 3명만 질의를 하고 나머지는 서면질의로 대체했다니 이런 식으로 감사를 할 바에야 감사대상기관을 더욱 선별하는 것이 더 능률적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남은 1주일의 감사기간에는 각 정당과 의원들이 보다 분발하기를 촉구하고자 한다. 아무리 대선이 급하고 마음이 콩밭으로 달려간다고 해도 성실한 감사,국정을 바로잡는 진지한 감사가 실은 가장 효과 큰 득표운동이 될 수 있음에 착안해야 할 것이다. 물론 창원 술판 같은 구태가 또 나와서는 안될 일이다. 각 정당 지도부는 소속의원들의 감사자세를 더 독려하고 챙겨야 할 것이며,서울시의원의 감사저지와 같은 일이 없도록 소속 지방의원 통제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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