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861번 지방도로, 섬진강 둑길 걸어보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월간중앙여기저기 둘러보면 참으로 걷고 싶은 길이 많다. 도시 주변에는 곳곳에 산책로가 많이 조성돼 있으며,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농로·임도·강둑길·옛길 등 비포장 도로가 많이 남아 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국도나 지방도는 드라이브 코스로는 참으로 아름답지만 걷기에는 아무래도 위험하다. 갓길의 폭이 겨우 70cm 정도에 불과하니 여유롭게 걷는 것은 고사하고 자칫 목숨까지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비교적 한가하고 아름다운 길이 있으니 바로 861번 지방도로다.

이 길은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에서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 다압면의 섬진마을과 구례군의 간전면-문척면까지, 그리고 구례읍-광의면의 너른 들녘과 해발 1,200m 고지의 지리산 성삼재를 넘어 전북 남원시 산내면의 실상사까지 이어지는 90km 정도의 비교적 짧은 길이다.

섬진강 물길 100리와 지리산 산길 100리로 이루어진 이 길은 지리산과 섬진강이 한 몸으로 만나고, 섬진강 하구와 남해안 광양만의 포구가 또한 분별없이 한 몸으로 만나면서 한반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눈에 보여주는 축소판으로 감동적이고도 절묘한 길이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19번 국도와 861번 지방도로가 근 100리 길을 마주하며 서로에게 피안(彼岸)의 세계로 존재하기에 비로소 계절마다 암수한몸의 꽃길과 물길이 되는 것이다. 다만 19번 국도는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길’로 명명되기도 하지만 차량의 폭주로 인해 자전거를 타거나 걷기에는 매우 위험한 데다, 이 길을 사랑하는 이들의 반대에도 4차선 확포장 계획을 강행하려 해 빈축을 사고 있기도 하다.

반면 벚나무 등의 푸른 그늘로 뒤덮인 861번 지방도는 한가한 데다 섬진강과 지리산을 바라보며 걷기에 아주 적합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추천하고 싶은 길은 861번 지방도 주변으로 이어져 있는 섬진강 둑길이다. 전남 구례군 문척면에 시오리가량 이어져 있는 강둑길은 비포장인 데다 잔디까지 잘 깔려 있어 천혜의 산책로가 아닐 수 없다.

구례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인 구례구역에서도 걸어서 20분 이내에 갈 수 있으니 승용차를 타고 오지 않더라도 접근하기가 쉽다.

먼저 구례군 문척면의 오산 사성암을 둘러보아야 한다. 사성암은 해발 350m의 그리 높지 않은 오산에 위치해 있지만, 사방이 한눈에 들어오는 뛰어난 경승지로 지리산 주능선과 구례평야, 그리고 섬진강 S코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천하의 조망 일번지다.

사성암을 둘러보고(산길이 부담스러우면 사찰의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하산한 뒤 섬진강변 도로를 따라 벚나무 푸른 터널 속으로 5분 정도만 걸으면 왼쪽으로 섬진강 둑길이 나온다. 그 둑길로 접어들면 왼쪽에는 풍요한 섬진강이 흐르고, 그 너머로는 구례 읍내와 지리산의 노고단·왕시루봉 등이 바라다보인다.

섬진교 아래를 지나면 옛 다리인 문척교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잠시 끊어진 강둑이 다시 이어져 문척면 금평리까지 시오리 길이 이어진다. 강둑길이 끝나면 아주 작은 마을 슈퍼가 있으니 목 마를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더 걷고 싶으면 861번 지방도를 따라 한나절이면 화개장터 앞 남도대교에 닿을 수 있고, 하룻길이면 매화마을까지 갈 수 있다. 물론 중간 중간 풍광이 좋은 곳에 간이 휴게소가 있으니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다.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