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판 ‘백 투 더 퓨처’ - 시간을 달리는 소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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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14면

누군가 시간을 멈추고 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미래를 알고 있는 상태로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은 ‘절대반지’를 손에 넣는 것만큼이나 강력한 권력을 쥐게 되는 일이다. 모든 기술과 자본을 동원해도 인간이 절대로 지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시간이기 때문이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이러한 질문에 무시무시한 상상력 대신 10대의 애틋한 성장통으로 답한다.

★★★☆ 감독 호소다 마모루 주연 나카 리이사· 이시다 타쿠야 러닝타임 97분

이 작품은 쓰쓰이 야스타카(筒井康隆)의 동명 SF소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소설이 발간된 것이 1967년이니 무려 40년이라는 역사를 지닌 셈이다. 이 작품은 ‘타임 리프(time-leap)’라는 독특한 소재를 선보인다. 이는 말 그대로 앞으로만 흘러가는 시간을 껑충 뛰어 되돌아감으로써 자기가 원하는 과거의 시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2006년 작품에서는 원작의 주인공이었던 가즈코가 조역인 이모로 자리를 바꾸었고, 그녀의 조카 마코토가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평범한 여고생이었던 마코토는 자전거를 타고 하교하다 열차 충돌 사고로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시간을 거슬러 사고 직전으로 돌아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타임 리프’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마코토는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과거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시험에서 만점을 받거나 동생이 훔쳐먹은 푸딩을 다시 찾아먹는 것으로 만족했던 마코토의 시간여행은 타인의 감정이 개입되기 시작하면서 고난도의 수학문제보다 더 난해해진다.

감독은 마코토의 시행착오들을 통해 사람들의 운명이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미줄처럼 복잡한 관계망 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마코토의 불행은 그녀가 피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불행으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시간을 문자 그대로 ‘달려가는’ 마코토의 모험담 속에 미래에 대한 10대의 막연한 불안감과 풋풋한 첫사랑의 경험을 녹여낸 이 작품은 말초적 자극을 최대한 배제하고 수채화처럼 잔잔한 감동을 주는 수작이다.

★표는 필자가 매긴 영화에 대한 평점으로 ★5개가 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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