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나팔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한쪽 시력을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둔

까만 나팔꽃 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현실의 고향이 사라진다. 지역주의 탈피와 정치적 반사작용일까. 시에도 고향이 사라지고 있다. 하동에서 태어난 시인의 고향은 정작 부모님이다. 수년 전에 작품을 쓰던 오피스텔을 처분하고 아버지가 사는 작은 아파트로 출근해 부친을 살핀다. 거기서 글을 쓰고 점심을 해먹고 함께 지내다 저녁에 귀가한다. 부친과 함께할 날이 많지 않았음이다. 연세가 너무 높고 기력이 쇠했다. 나팔꽃 씨를 아침 약인 줄 알고 집어드시는 아버지를 보는 어느 날 아침의 수작. 이제 고향은 서울에 살고 있으며 아들은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었다.

고형렬.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