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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근대미술사 재조명|간송미술관 「한국 근대회화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우리 근대미술의 흐름을 살피고 현재 한국화단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되돌아보는 「한국 근대회화전」이 25일까지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762)0442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1880년 이후 1930년대까지 제작된 동양화 54점이 출품됐다.
대상작가는 채용신(1848∼1941) 지창한 강진희 지운영 윤용구 강필주 김규진 김돈희 이경승 홍임 김진우 이도영 정학수 고희동 오일영 김은호 이한복 이상범 노수현 변관식 최우석(1899∼1965)등 21명.
이들은 대부분 조선시대의 마지막 거장 소림 조석진(1853∼1920)과 심전 안중식(1861∼1919)에게 배웠거나 영향받은 이들로 우리 미술사에서 전제사회와 전제 이후 사회를 연결하는 시기의 대표적 화가들이다.
출품된 작품을 보면 전통미술과 서구미술양식 사이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 당시 청나라에서 유행하던 기명절지화·신선도 등에 기울어진 것, 추사의 문인화풍을 고수하려는 작품 등으로 크게 대별된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간송미술관 최완수 연구실장은 『우리근대회화가 성리학·고증학 등 주도이념이 무너지면서 중국화풍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일본을 통해 서구사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 전통미술과 단절된 국적불명의 흐름을 형성하게됐다』고 규정하고 이 전시회가 왜곡된 우리 근대미술사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미술평론가 오병욱씨(원광대교수)는 전시도록에 실은 논문 「한국 근대회화사에 가해진 서구미술의 충격과 반향」에서 『성리학이 조선조의 주도이념으로 제구실을 다할 때 이를 바탕으로 겸제 정선(1676∼1759)의 진경산수화풍이 창안됐고, 성리학이 제구실을 못하자 고증학으로 대체하려던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추사체가 이루어진데 반해 오원 장승업(1843∼1897)시대에 와서는 자기문화에 대한 확신과 긍지를 상실, 중국화풍을 무조건 모방하는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밝혔다.
중국화풍의 모방은 소림 조석진과 심전 안중식에게 전수되고, 그들의 제자들인 이번 전시작가들에게 그대로 이어져갔다.
더욱이 일제의 침탈로 전통문화의 단절이 급격하게 이루어짐으로써 우리 근대회화의 무국적성은 더욱 심화됐다. 해방 이후 한국화의 기초를 닦은 것으로 평가되는 청전 이상범·소정 변관직의 그림도 1930년대까지는 우리 것의 느낌을 찾을 수 없을 정도라는 것.
그러나 왜곡된 우리의 근대미술사를 재조명하려는 이번 전시회에서 동양화의 화맥을 현대에 전한 전달자 속에 무호 이한복·정제 오일영·백련 지운영 등을 새로이 추가할 수 있었던 것은 뜻밖의 수확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해온 작품들을 선보이며 우리 근대미술의 잘못된 흐름을 반성하는 이번 전시회는 그런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끈다. <최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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