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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집인데…〃난로로 월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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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조중훈 한진그룹회장(72)은 대개의 자수성가한 창업 1세대가 그렇듯이 매사에 돈이 헤프게 나가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미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몇년 전까지만 해도 건당 10만원이 넘는 회사지출은 반드시 그의 도장을 받아야했다. 이를 두고 너무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트럭을 직접 몰고 다니며 운수업을 일으켰던 그의 젊은 시절을 돌이키는 사람들은 그를 「구두쇠」라고 하지 않는다. 대개 고희를 넘긴 원로급 재벌총수들은 요즘의 젊은 경영인들과 다른 구석이 있다.
이들은 물건 하나 싸게 만들기 위해 몇원 아니 몇전까지 원가와 씨름하면서 오늘의 자기 위치를 일구어 냈고, 대개가 배고픈 시절의 처량함을 한때나마 경험한 탓인지 2세 경영인들보다 좀 투박하기는 해도 천원짜리 한 장, 비품 하나라도 함부로 쓰이는데 대해 생리적인 거부감을 느낀다.
이같은 태도는 기업경영뿐 이니라 일상생활에까지 이어져 여러 가지 일화가 교훈으로, 때로는 호사가들의 흥미 거리로 회자되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없어서 돈을 아끼는 것이 결코 아닌지라 한번 쓸 때는 크게 쓰는 것이 보통이다.
조회장만 해도 대학에 수십억원을 선뜻 기부하기가 예사고 또 자신의 취미나 종교(자동차광·불교신자)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이를 구태여 『돈 쓸줄 안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는 각자의 판단이 다를테고 최소한 인색하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이같은 점을 놓고『재벌총수들의 근검절약이 다분히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한 작위적인 제스처이거나 부자의 도덕적 자기만족』정도로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구두바닥이 닳으면 밑창만 갈아 다시 신고, 『넓은 집안에 보일러 땔일 있느냐』며 겨울을 난로 하나로 버티는 조회장의 행동을 단지 「체하기」나 자기만족을 위한 것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그가 술을 「미친 물」이라고 멀리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취기로 정신을 흩뜨리지 않겠다는 몸에 밴 근면의 또 다른 표현일 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같은 생활태도를 자식들에게「강요」한 것도 같은 연배의 재벌1세대와 흡사한데 장남인 조양호대한항공사장(43)을 부친 못지 않은「구두쇠」로 키워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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