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도 사회규범 맞게(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원주의 한 「여호와의 증인」교회에서 발생한 방화참변은 신앙생활과 가정생활 사이의 갈등과 마찰이 일으키는 사회문제의 극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교회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범인은 경찰에서 아내가 여호와의 증인 교회에 다니면서 가정을 돌보지 않아 홧김에 불을 질렀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는 범행 당시 술에 만취돼 있었으며,평소 아내에게 가졌던 불만이 술기운으로 증폭,폭발하는 바람에 방화라는 범행까지 간듯 하다. 따라서 그 결과로 14명이나 되는 인명이 희생된 큰 참사를 빚긴 했으나 범행동기는 아내에 대한 불만이요,울분이란 단순성을 띤다.
그러나 범인의 아내가 가정을 돌보지 않은 원인이 신앙생활에 있었다면 문제는 종교와 사회의 갈등 차원에서도 일단 진단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참변이 일어난 여호와의 증인 교회인 「왕국회관」에 다니는 신도들의 가정이 모두 이런 갈등에 빠져있는건 아닐 것이다. 따라서 범행을 저지른 특정인의 인성과 부부관계가 직접적인 범행동기가 됐겠지만 신앙생활과 가정생활의 마찰에서도 중요 원인을 찾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사람에게 신앙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 그리고 우리 헌법도 분명히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모든 종교가 통상적으로 사회질서와 갈등을 빚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회는 종교에 대해 사회질서의 개선과 인간심성의 교화라는 공익적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종교가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오히려 사회와 조화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때 종종 사회적 비난과 규제의 대상이 되곤 해왔다. 우리는 가까운 사례를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시한부 종말론」에 대한 사법적 대응에서 볼 수 있다.
우리는 특정교단이나 종파를 두둔하거나 깎아내릴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신앙의 자유가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혀 사회불안을 가져오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종교의 교리나 신앙활동이 사회의 규범 및 질서와 양립하는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개인적인 신앙생활은 존중돼야 하지만 그에 따른 가정의 갈등으로 인해 방화사건이 일어나고 무고한 사람들이 무더기로 불타 숨지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이미 이는 신앙만의 문제를 넘는 중대한 사회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점에서는 종교지도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가정을 버리라고 종용하는 종교지도자는 없으리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자주 눈에 띄는 일부 광신적 행태는 가정과 사회에 불안요인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앙은 정신적 내면 세계에서는 절대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신앙행위가 사회적 규범과 질서를 도외시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종교지도자들의 신도관리가 요망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