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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업하려니] 中企사장 1주일 동행 취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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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천명해 왔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나온 이야기다. 과연 한국은 기업하기에 얼마나 좋은 나라일까? '2003년 한국 기업인의 실상'을 알아 보기 위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추천받아 지난 15~ 21일 경기도 안성의 자동차 모터 부품업체인 BMC의 최두호 사장을 동행취재했다.

기자는 취재과정 내내 "한국에서 사업하는 것은 정말 힘들겠구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崔사장은 이번 취재로 같은 단지 내 기업들과 시청 공무원이 혹 불이익을 당할까봐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기자는 규제와 관계된 부분은 담당 공무원을 만나 입장을 들었다. [편집자]

법 바뀌어 소각로 폐기
쓰레기 처리에 월 3백만원

◇법이 바뀌는 바람에=지난 17일 오전 11시30분. 대형 쓰레기 처리 차량이 공장 입구에 들어섰다. 관리부 직원 4명이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직원들이 쓰던 장갑 등 각종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한달에 1백만~3백만원이다. 이 업체는 처음에는 공장 뒤편에 소각로를 설치해 쓰레기를 태웠다.

그러나 몇 년 전 정책이 바뀌면서 현재처럼 외부 업체에 위탁 처리해야 했다. 법규가 바뀌는 바람에 2천5백만원을 들여 만든 이 소각로는 고스란히 폐기 처분했다.

관리과 직원은 "비가 올 때 생기는 침출수를 막기 위해 쓰레기 적치장에 슬레이트 지붕을 덮어 놨더니 그것도 불법이라며 고발당한 상태"라며 한숨 지었다.

용역업체인 성림산업 관계자는 "경기도 일대 1백여개 공장의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는데 모두 이 같은 불만을 토로한다"고 설명했다.

안성시 관계자는 "소각로는 다이옥신 문제 등으로 환경 규제가 매우 엄격하다"며 "2000년 소각로 관리 규정이 더욱 강화돼 대기업은 몰라도 중소기업이라면 제대로 된 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해 외부 처리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말했다.

주문 늘어도 공장 못늘려
벌금 각오하고 무허 증축

◇잘못인 줄 알았지만=검찰에 출두해야 하는 17일 오후 崔사장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전날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심근 경색 치료를 받아 상태가 안 좋았지만 몸을 추슬렀다.

그는 최근 불법 건축물(창고 등 5백4평) 때문에 1천4백만원의 벌과금을 냈다. 자진 철거할 때까지 매년 두 번씩 벌금을 내야 한다.

崔사장은 "단속 공무원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할 일을 한 것일 뿐"이라며 "법대로 철거해야 하지만 그러면 사업을 그만둬야 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벌금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검찰 직원의 말이 계속 귓전을 맴돌았다.

崔사장은 1997년 안성에 공장을 차린 뒤 그간 수입에 의존하던 모터 부품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설립 초기 10억원도 안 되던 매출은 99년 69억원, 2000년 1백20억원, 2001년 1백40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는 2백억원을 달성할 전망이다.

崔사장은 자동차나 세탁기 등에 사용되는 소형 모터의 하우징(케이스)과 구리선을 감는 핵심부(코어)를 생산하고 있다. 자동차 윈도 브러시.창문 개폐 등에 사용되는 모터 하우징의 경우 시장 점유율이 90%에 이른다. 대한상의가 주최하는 혁신기업상 등 웬만한 품질 관련 상은 거의 다 받았다. 이런 과정에서 공장 증설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崔사장은 "발주량이 늘어 기계를 더 들여와야 하는 데다 납품받는 기업에서는 품질관리 등을 위한 시설 확충을 요구하는데 어떻게 공장을 늘리지 않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처음부터 법을 어긴 게 아니다. 崔사장은 99년 안성시에서 허가를 받아 기존 공장(약 8백50평) 옆에 파이프와 천막으로 가건물을 지었다.

이곳에 제품을 보관하고 일부 설비를 들여놓았다. 그러나 천막 건물은 2000년 겨울 폭설로 무너져 내렸고 그의 가슴도 무너져 내렸다. 누수와 온도.습도에 민감한 제품이어서 손실도 컸다.

이에 따라 정식 허가를 받아 공장을 짓기 위해 인근 땅을 매입했지만 수도권 공장총량제 등 각종 규제로 '공장을 지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 뒤 불법인 줄 알면서도 공장 옆에 철골조 건물을 지어 버렸다. 그가 검찰에 나가야 했던 이유다.

안성시 관계자는 이와 관련, "공업지역 내 공장이 아니라 계획관리지역(옛 준농림지) 내 공장"이라며 "건축법을 위반해 고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건축법에서 건폐율 등을 정한 것은 마구잡이 개발을 방지하고 쾌적성.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BMC만 건폐율 기준을 높여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BMC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곳을 공장 지역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이는 수도권 공장 총량 규제에 저촉된다고 덧붙였다.

"사업 접고 싶지 않나" 묻자
"가족은 어쩌고…천직인데"

◇중고 책상에서 희망을 찾아=지난 15일 처음 찾은 사장실은 공장 한편에 2평 정도의 작은 공간이었다. 사장실이 작다는 말에 그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결재만 하는 자리인데 넓을 필요없다"며 "작업환경 개선에 돈을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관리과 직원은 崔사장 책상이 중고품 센터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계를 구입할 때도 값싼 중고기계를 구입, 수리해 사용한다. 19일 오후 난방 설비를 새로 들여놓자는 관리부의 보고에 그는 "있는 것 고쳐 쓸 생각을 해야지 무슨 낭비냐"고 야단쳤지만 마음은 좋지 않았다.

사업을 접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는 물음에는 "나와 우리 직원, 그리고 가족들은 어떻게 하느냐"며 "내 천직"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치자금 논쟁에 대해 崔사장은 "누구와 친해진다고 그 사람이 우리 회사에만 좋은 일을 해줄 수 있겠느냐" 며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고 되는 것은 되는 것이기에 정치인들과는 가깝게 지낼 일도, 지내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말했다. 최근 늘고 있는 청년실업에 대해서는 "마음만 먹으면 일자리는 많은데 눈이 너무 높다"며 "중소기업 근로자가 대접받고 일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쉽다"고 말했다.

崔사장은 "앞으로 3~4년 내 매출 5백억원대의 세계 최고 수준 모터 부품 업체로 키울 계획"이라며 "제대로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식구들에게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염태정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choissie@joongang.co.kr>

<기자가 일주일간 동행한 최두호 사장 주요 일정>

▶12월 15일(월)=급여 관련 연금 등 서류 결재 및 급여 지급

▶16일(화)=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심근경색 치료

▶17일(수)=불법 건축물 고발 건으로 검찰 출두 조사

▶18일(목)=대전 기능대에서 1차 선발한 인력 면접시험

▶19일(금)=주거래 은행인 기업은행 관계자 회사 방문 면담

▶20일(토)~21일(일)=2004년 사업계획 수립을 위해 직원들 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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