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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빌딩값 하늘 높은 줄 모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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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국 주택시장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뉴욕 등 미 대도시의 업무용 부동산 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이달 1일 미 부동산중개인협회(NAR)가 발표한 4월 잠정 주택판매(Pending Home Sales) 지수는 지난달에 비해 3.2% 떨어졌다. 전년에 비해서는 10.2%나 감소했다. 잠정 주택판매란 매매 계약은 했지만 대금 지급 등 거래가 끝나지 않은 계약 건수를 집계한 것으로 기존 주택 판매의 선행지표로 쓰인다. 지수가 계속 떨어진다는 건 주거용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었다는 의미다.

반면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의 대도시, 특히 뉴욕 맨해튼 내 업무용 부동산 값은 최근 2년간 두세 배 뛰었다. 실제로 맨해튼의 대표적인 부동산업자인 티시맨 스페이어는 뉴욕 타임스 본사 건물을 2004년 구입한 뒤 3년이 지난 올 초 구입가의 세 배인 5억2500만 달러에 되팔았다. 또 지난 5월 말 골드먼 삭스는 맨해튼 매디슨 가의 한 빌딩을 사상 최고가인 스퀘어피트 당 1471달러에 매각했다.

이 같은 빌딩 값의 폭등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다. 우선 사무실 수요가 큰 폭으로 늘었다. 최근 수년간 계속돼 온 경기 활황으로 기업들이 더 넓은 사무실을 원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사무실 임대료가 상승했으며 덩달아 업무용 부동산 가격도 뛰었다. 실제로 뉴욕시 전체의 사무실 임대료는 지난해 30%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로 세계적으로 풍족해진 유동성 탓도 있다. 외국 자본, 특히 오일머니가 미국 대도시의 부동산 시장에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중동 부동산 펀드의 미국 투자는 2005년 12억 달러에서 지난해 70억 달러로 늘었다. 6배나 증가한 셈이다. 중동 부동산 펀드는 지난해 전체 투자액 130억 달러의 절반 이상을 미국 시장에 쏟아 부었다. 그중에서도 맨해튼이 가장 인기가 있어 중동 펀드는 이곳에서 35억 달러 규모의 부동산을 매입했다.

마지막으로 업무용 부동산 구입을 위한 금융권의 대출 지원도 확충돼 빌딩 값 인상에 한몫하고 있다. 그간에는 빌딩 구입가의 60~70%까지 금융기관에서 대출해 주는 게 미 금융권의 관행이었다. 그러나 금융기관 간의 대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건물가의 95%까지 빌려주는 곳이 생겨나 대형 빌딩 구입 붐을 조장하고 있다. 이 같은 요인으로 요즘 뉴욕을 중심으로 한 미 대도시의 업무용 부동산 가격은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이 같은 현상으로 업무용 부동산을 보는 일반적인 시각도 변하고 있다고 WSJ는 분석했다. WSJ는 "과거 업무용 부동산이란 지속적으로 일정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채권'처럼 인식됐었으나 요즘은 주로 단기간의 가격 상승으로 이익을 거둘 수 있는 '주식'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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