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치가 뿌리 내리자면…(성병욱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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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금까지의 대통령선거 경쟁양상을 보면 14대에는 문민출신 대통령이 나오는게 대세다. 그렇게 되면 5·16이후 30여년만에 문민정치가 다시 출범하게 되는 것이다.
문민정치의 가능성이 높아진데는 여러 요인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요인은 물론 국민의 민주화의지가 성숙되고 단련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모든 변화의 기초다. 그만은 못하지만 또하나 중요한 요인이 있다. 그것은 현재 집권세력의 중추부가 이런 흐름을 인식하고 적어도 다음 대통령은 문민출신이 맡는게 국민정서상 불가피하다고 한발 물러섰다는 사실이다.
○커진 국민역량이 바탕
얼마전 대통령의 뜻과 집권세력의 흐름에 정통한 요직자들로부터 들은 얘기다.
노태우대통령은 문민통치에 대해 일반적으로 운위되는 것처럼 군출신 배제론으로는 해석하지 않는다. 군인출신이라 하더라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경력을 쌓고 정치에 투신해 정치역량을 키워왔다면 문민·비문민을 따질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다. 다만 대통령으로서는 다음 대통령만은 61년의 5·16이나 80년의 5·17같은 비상한 사태에 의해 급격히 성장한 사람을 가급적 피하는게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지닌 것 같더라는 얘기였다.
이 요직자는 지난번 민자당의 대통령후보 경선때 노심이 박태준·이종찬씨를 제쳐두고 김영삼씨에게 낙착된 것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군을 포함한 지금까지의 집권세력 중심부가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지금의 형편상 우선은 집권세력의 교대가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듯 하다.
그러한 인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흔쾌했을 리는 없다. 지난 30여년간 「무책임하고 큰 일 낼 사람들」로 보는데 길들어 왔던 두 김씨를 다음 지도자로 용인하기까지는 심리적 저항과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아무리 민자당의 김영삼총재가 3당합당으로 3년 가까이 집권당에 합류해 있었다지만 무리해서라도 도울 「우리편」이 되기는 어려웠다. 그런 측면에선 그들에게는 두 김씨가 별로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노 대통령의 전례없는 민자당 탈당과 대통령선거에서의 중립선언은 이런 배경에서도 볼 여지가 없지 않다. 아무튼 집권세력 일부의 시선이 곱지는 않지만 문민정치로의 대세는 이제 확고하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문민정치로의 복귀,그 자체도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이룩해야 할 내용이다. 정치력과 도덕성에서 지난 30여년간의 정치와는 차별성을 보여야 한다. 그러한 차별성의 싹은 지금부터 나타나야 한다.
○정치압증은 위험신호
중립선거관리내각이 출범하고 대통령이 중립을 선언하고 공무원들이 선거간섭 압력을 덜 받도록 사태가 돌아가는 것은 그 차별화의 좋은 싹이다. 3당 영수회담에서 조속한 국회정상화에 합의한 것도 불행중 다행이다.
그러나 법에 규정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날짜를 아무 조치없이 넘겨 위법상태를 초래하고 국회개원후 5개월 가까이 원구성도 끝내지 못하고 공전해온 것은 구태의연을 넘어 오히려 나쁜 쪽으로 차별성을 드러낸 것이었다. 문민정치의 앞날을 위해서도 이런 무실의 정치는 거듭되지 말아야 한다.
문민정치가 이룩되고 발전하기 이해선 특히 이 시점에서 정치가 잘 해야 한다. 문민정치가 회복되게 된 바탕이 무엇인가. 바로 국민의 열망과 강해진 힘이 아닌가. 그 국민이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와 정치인을 우습게 보게 되었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지겠는가. 그러한 국민의 공허감을 노리고 그 공허를 메우려는 책동이 벌어지지 않겠는가.
그것은 외부세력에 의해서일 수도 있고,내부세력에 의해서 일수도 있다. 지금 남북대화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몇갈래의 대남공작이 적발되고 있는 것을 보면 북한은 우리의 허점을 노리는 통일전선전략을 바꾸지 않은게 분명하다. 이럴수록 군 등 안보를 책임지는 세력들은 더욱 긴장하게 된다. 정치·사회의 불안을 국가안전에 대한 불안인양 생각하게 되기 쉽다. 물론 지금은 61년과도 다르고 80년과도 다르다. 그 때보다 국력도 커졌고 국민의 민주역량도 강화됐다. 사회도 복잡해지고 다원화됐다.
그래서 문민정치가 돌아오게 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를 너무 과대평가할 일도 아니다. 79년과 80년에도 61년과는 다르다고 했었다.
○정치 잘하는게 중요
문제는 지금 정치가 잘 하느냐에 달렸다. 정치가 국가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상대방 멍들이기가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좋은 결과를 생산하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정치인들이 변해야 하고,특히 대통령후보들이 달라져야 한다.
그렇게 해서 모처럼 출범하게 될 문민정치가 모진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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