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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너무 비싸다 ⑤ 골프 비용 세계 최고 수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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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골프 라운드 비용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대도시 주변의 두 배 수준이며 일본 도쿄 인근 골프장보다도 30%가량 비싸다. 주말 골프 한 번에 30만원 가까운 돈이 들어간다. 보기 플레이어(90타)라면 샷 한 번에 3300원 정도 쓰는 셈이다. 특히 21만원 안팎인 그린피(골프장 이용 요금) 중 각종 세금이 평균 7만6120원으로 홀당 4228원에 이른다. 골프장들도 수요(골프 인구)에 비해 공급(골프장)이 부족한 점을 노려 그린피를 비싸게 받고 있다. 이런 까닭에 지난해 100만 명의 골퍼가 해외를 찾아 1조원을 쓴 것으로 추산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3년간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올해 초 귀국한 박경호(44)씨는 얼마 전 경기도 용인시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마친 뒤 29만5000원을 냈다. 주말이었던 이날 4명이 계산한 골프비는 103만원. 이 중 비회원인 박씨의 비용은 그린피(21만원).카트비(1인당 2만원).캐디피(1인당 2만5000원)에 식사와 그늘집 음료 비용을 합쳐 29만5000원이었다. 박씨는 93타를 쳤으니 한 타당 3172원을 쓴 셈이었다. 박씨는 "파리에서는 성수기 주말에도 그린피 60유로(7만5000원), 식사비 20유로(2만5000원) 등 10만원 이내로 라운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골프비용 단연 세계 최고=중앙일보가 KOTRA와 함께 세계 주요 도시의 골프 비용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평균 골프 비용이 세계에서 가장 비쌌다. 한국 관광객이 흔히 찾는 태국 방콕 인근의 중상급 골프장인 프레지던트 컨트리클럽의 경우 주말에도 캐디피.카트비용과 식사까지 모두 합해 1인당 6만원이면 충분하다. 골프장이 많은 미국 LA의 경우 2002년 이 지역 최고 코스로 뽑힌 웨스트레이크빌리지골프장(도심에서 한 시간 거리)의 주말 그린피도 30달러에 불과하다.

물가가 비싸다는 일본도 골프에 관한 한 한국보다 싸다. 도쿄역에서 한 시간 거리인 지바현의 중상급 수준 골프장 '이토피아 지바'의 그린피는 토요일 1만9000엔(14만6000원), 일요일 1만8000엔(13만9000원)으로 서울 인근 골프장의 70% 수준이었다.

◆비싼 골프의 주범은 세금=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 따르면 한국 골퍼들은 라운드당 7만6120원의 세금을 내고 있다. 특별소비세(1만2000원), 교육세 및 농특세(각각 특소세의 30%), 부가가치세, 국민체육진흥기금(3000원)에 골프장이 내는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법인세.사업소세 등을 반영한 금액이다. 보기 플레이어(90타 정도를 치는 사람)의 경우 샷 한 번에 846원(홀당 4228원)을 세금으로 내는 셈이다.

골프장에 대한 무거운 세금은 1974년 대통령 긴급조치에 따른 것이다. 골프장이 당시 '사치성 재산'으로 분류되면서 일반 사업 시설보다 훨씬 높은 세금을 물고 있다. 한 해 골프장 내장객 수 2000만 명에 이르는 지금도 긴급조치에 의한 세금 체계가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회원제 골프장에 대한 재산세율은 4%로 일반 시설(0.2%)의 20배다. 골프장을 지을 때 내는 세금도 많다. 골프장 취득세율은 조성비용(땅값+공사비)의 10%로 일반 업종의 5배에 이른다. 30억~50억원에 이르는 각종 개발부담금도 따로 내야 한다. 땅값 상승과 정부의 과표 적용률 인상에 따라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골프장의 세금 부담은 해마다 늘고 있다. 골프장경영협회 안대환 전무는 "지난해 골프장 매출의 절반 정도를 세금으로 냈다"고 주장했다.

◆골프장도 배짱 장사=골프장이 골프 인구에 비해 너무 적은 것도 골프 비용을 비싸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운영 중인 한국 골프장은 251개. 한국 인구의 2.6배 정도인 일본은 2500개, 6배 조금 넘는 미국은 1만8000개의 골프장이 있다.

이 때문에 한국 골프장은 손님을 많이 받고 있다. 한국의 18홀당 연간 내장객 수는 7만5000명으로 미국의 13.6배, 일본의 2.2배다. 그런데도 한국 골프장들은 세금 타령을 하면서 그린피 등을 비싸게 받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세금을 적게 내는 퍼블릭 골프장도 회원제 골프장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그린피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골프 코스가 부족한 상황을 이용해 골프장들이 세금 부담을 고스란히 이용객들에게 전가하면서 경영을 합리화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형 골프채는 고가 마케팅=골프채는 특별소비세의 폐지, 병행 수입(국내 독점수입업자 이외의 수입업자들이 들여오는 것) 허용 등으로 외국과의 가격 차이가 많이 좁혀졌다. 하지만 유명 골프채 회사들은 최신형을 내놓을 때 '아시아 스펙(사양)'임을 이유로 한국에서 미국의 배 가까운 값을 받고 있다. 나이키의 신형 사각 드라이버 'SQ sumo 2'와 캘러웨이의 X-20 아이언세트는 LA에서 각각 300달러(28만원), 900달러(84만원)인데 서울의 한 골프숍에선 53만원, 160만원을 받고 있다. 한국인이 최신형 골프채를 선호하는 점을 이용한 고가 마케팅 전략이다. 그러다 보니 유행이 지나면 곧바로 값이 떨어진다. 1년 전 60만~70만원이었던 유명 드라이버가 정품인데도 현재 인터넷에서 20만원 내외에 팔리는 식이다.

특별취재팀

국내에서 골프장 부킹이 쉽지 않고 골프 비용이 비싸다 보니 많은 골퍼가 중국·동남아·일본 등으로 골프 여행을 떠난다. 한 항공사 직원이 골프가방이 가득 실린 대형 카터를 옮기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서 골프 한 번 칠 돈이면 해외선 이틀간 무제한 라운드"
지난해 100만 명 원정 골프

'중국 2박3일 무제한 라운드 50만원대, 3박4일 무제한 라운드 70만원대'. 여행사마다 이런 해외 골프 여행상품을 팔고 있다. 물가가 비싸다는 일본에서 2박3일 골프를 즐기는 상품도 50만원대다. 서울 인근의 주말 라운드 비용이 30만원에 육박하는 것과 비교조차 하기 힘들다. 제주 여행상품도 1박2일(45홀)에 40만원에 육박한다.

이처럼 해외 골프가 싸다 보니 지난해 해외 골프를 다녀온 여행객이 100만 명을 넘은 것으로 관광공사는 추산했다. 또 이들이 해외에서 쓴 돈은 1조1000억원에 이른다는 게 한국레저산업연구소의 추산이다. 골프 인구는 크게 늘어났는데 국내에서 골프장 부킹이 쉽지 않고 골프 비용이 비싸다 보니 해외로 나가 골프를 즐기려는 사람이 매년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골프업계는 골프장 건설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을 줄여 골프 비용을 낮출 경우 골프 수지 적자를 상당폭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골프장에 부과되는 특별소비세와 체육진흥기금을 폐지하고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를 완화해 그린피를 1인당 4만5000원 정도만 낮춰도 해외 골프 여행객을 상당 부분 흡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경우 세수는 6000억원(지난해 회원제 골프장 이용객 수 1330만 명×4만5000원)가량 줄지만 1조원을 넘는 골프 수지 적자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골프 요금 인하만으로 해외 골프 여행객을 국내에 잡아두기 힘들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회원제 골프장이 대부분인 국내에선 골프 부킹이 쉽지 않은 데다 호텔 등 숙박 비용과 식사 비용 등 부대 비용도 외국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내장객의 90% 이상이 한국인인 중국 옌타이 일대 골프장의 경우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로 각종 비용을 모두 합해도 제주보다 싼 실정이다. 골프 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선 골프 요금뿐 아니라 숙박 비용 등 관련 물가 수준까지 낮추는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각종 규제를 없애 퍼블릭(비회원제) 골프장을 대대적으로 확충해 부킹을 쉽게 하고 골프장 이용료와 관련 비용을 싸게 하지 않으면 해외 원정 골프를 막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이세정.이현상.김창규.박혜민.문병주 기자(경제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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