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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주 KTF 사장이 한산도에 간 까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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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18면

지난달 29일 오후 경남 통영의 한산도. 조영주(51) KTF 사장이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사당에 들어섰다. 묵념을 올리는 표정이 자못 비장했다. KTF 임원과 자회사 최고경영자(CEO) 등 50여 명이 뒤따랐다. 이들은 이순신 장군이 삼도 수군을 지휘하던 제승당에 올라 당시 해전도를 유심히 살폈다. ‘통영 경영전략 워크숍’은 조 사장의 지시로 열렸다. 서울 인근 리조트가 단골장소였던 데 비춰보면 이례적이다. 현장에선 ‘이순신 리더십’ 전문가인 지용희 서강대 교수의 즉석 강의가 펼쳐졌다.

“이순신 전법이 내 경영 교과서”

조 사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자며 ‘생즉필사(生則必死), 사즉필생(死則必生)’을 인용했다. 명량대첩이 벌어지기 직전 충무공이 병사들을 독려하며 쓴 문구다. 당시 이순신은 물살이 급한 울돌목(명량)으로 일본 수군을 유인, 불과 12척으로 133척의 적 함대를 깨뜨려 일거에 전쟁의 판도를 뒤바꿨다.

현재 이동통신 시장은 전쟁터다. 3월 KTF는 ‘쇼(Show)’라는 브랜드로 3세대(3G) 이동통신 전국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달 말 가입자 수는 61만 명으로 SK텔레콤 가입자의 두 배가량이다. KTF가 거둔 사실상 첫 승리다. 지금 또 한 번의 ‘이순신 퍼포먼스’로 조 사장이 임직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뭘까.

그는 이순신 장군 마니아다. 평소 이순신에 관한 것이라면 역사책, 리더십 관련 서적, TV 다큐멘터리 등 빠뜨리지 않고 챙겨 본다고 했다.

“몇 년 전 이순신 관련 드라마가 방영될 때는 집에서 채널 쟁탈전이 벌어졌어요. 평소 드라마를 잘 안 보는 편인데 주말이면 TV 앞을 점령하는 바람에 집사람의 원망을 많이 들었습니다.”

‘3G 전쟁’에서도 이순신의 전략을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이순신은 이른바 용맹하고 싸움을 잘하는 장수는 아니었어요. 용장(勇將)보다는 지장(智將)에 가까웠죠. 23전23승의 신화를 만들 수 있었던 건 철저하게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했기 때문입니다. 적을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유리한 전장으로 적을 끌어들이는 전법을 썼죠.”

그는 기존 2세대 이동통신 시장은 KTF에겐 ‘이길 수 없는 바다’였다고 말한다. 효율이 높은 이른바 ‘황금주파수’인 800㎒ 대역을 선발 사업자인 SK텔레콤이 거머쥐고 있기 때문이다. 효율이 떨어지는 1.8㎓의 고대역 주파수를 쓰는 KTF가 통화품질로 경쟁하기 위해서는 기지국을 더 촘촘하게 설치해야 한다. 그만큼 돈이 많이 들었다. 같은 방식의 서비스를 하는 나라도 많지 않아 해외 로밍에도 불편이 많았다.
조 사장은 3G라는 새로운 ‘전장’ 을 주목했다. 3G 서비스에서는 SK텔레콤이나 KTF나 똑같이 2.1㎓의 고대역을 쓴다. KTF의 약점이 강점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미 기지국을 많이 만들어놓은 덕에 3G용 안테나만 달면 됐다.

‘철저한 준비’도 조 사장이 이순신에게서 감명을 받은 부분이다. 그는 2002년 월드컵 당시 KT아이컴 대표로 한-일 화상통화 시연을 성공시켰던 경험이 있다. 주변에선 현 기술 수준에선 무리라고 말렸다. 그 자신도 시연회 직전까지 성공을 장담하지는 못했다. “일본 업체 사장이 혹시 실패할까 봐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가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달려오더라”라는 게 그의 회고담이다. 당시 밤을 지새우며 체득한 3G 관련 기술과 운영 노하우는 지금 약이 되고 있다. “경쟁사가 단기간에 통화 품질을 따라오긴 힘들 것”이라고 호언할 정도다.

이순신 부대가 규모에서 월등한 적을 상대로 자주 쓴 전법이 매복, 그리고 기습이다. 지난해 SK텔레콤은 세계 최초로 ‘진화한 3G 서비스’인 HDSPA를 상용화했다. 그러나 전국 서비스망 구축은 KTF가 빨랐다. 망 구축에 동원된 KTF 직원은 전국에서 6개월간 야간작업을 했다. 경쟁사에 동태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3월 전투가 벌어졌고 집중 포격이 시작됐다. 언론매체는 온통 ‘쇼를 하라’는 광고로 도배됐다. 물량공세를 퍼부으며 조 사장이 갈구한 건 ‘첫 승리의 경험’이었다. 실제로 그는 “직원들 사이에 자신감이 싹튼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2005년 KTF로 오니 직원이 자괴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안 되더라. 그냥 2위 몫이나 챙기자’는 겁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쇼’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각인시킨 것도 큰 전과다. ‘만년 2등’을 연상시키는 KTF 브랜드는 일부러 숨겼다. 조선맥주가 ‘하이트’를 앞세워 OB맥주를 넘어섰던 전략과 닮았다. 일종의 착시효과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KTF가 입은 내상도 컸다. 마케팅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면서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KTF의 1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다소 늘었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익은 각각 41.4%, 38.5% 줄었다. 시장에서 ‘제 살 깎아 먹기’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경쟁사들이 2G시장을 파고들면서 점유율은 정체상태다. 그렇다고 3G 시장의 선점을 말하기에는 여전히 경쟁은 초기 단계다.
조 사장은 야구 경기에 빗대 현 판세를 분석했다.

“이제 안타 하나 치고 1루에 나간 정도가 정확할 겁니다. 작은 성공일 뿐이죠.”
그는 “지금껏 살면서 지는 싸움은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치밀한 계산과 집중력이 장기다. 싱글 골퍼인 그는 실수가 적고 특히 퍼팅에 강한 스타일이다. 그는 “이제 작전을 걸 타이밍”이라고 했다.

하지만 SK텔레콤은 강팀이다. 울돌목의 물살이 급하다는 것도 이미 안다. 그래서 쉽사리 전장을 옮기기보다는 ‘영상통화료 인하’ 등 위협적인 견제구를 날리며 페이스를 조절하고 있다. 변수는 또 있다. “휴대전화 요금 좀 내리라”는 관중의 야유가 커지고 있는 것. 요금 인하가 이슈가 되면 벌어놓은 돈이 많은 SK텔레콤에 비해 KTF의 부담이 더 크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유선 리그’ 1위인 KT가 원군으로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올 하반기부터는 이동통신에 집전화ㆍ인터넷 등을 묶은 유ㆍ무선 결합상품이 출시된다. 통신시장에도 ‘인터리그(팀들이 리그 간 벽을 넘어 맞붙는 경기)’가 본격화되는 셈이다. 유ㆍ무선을 가르는 칸막이가 사라지면서 시장이 무한경쟁으로 돌입하고 있다.

‘통영회의’는 이처럼 전황이 복잡해지는 와중에 열렸다. 조 사장은 “3G가 대세인 만큼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 페이스대로 갈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그랜드 쇼’가 펼쳐질지, 아니면 ‘깜짝 쇼’로 그칠지는 그가 구사할 작전에 달려 있다.

“쇼 돌풍은 ‘작은 성공’작전 걸 타이밍 됐다”

조 사장은 야구 경기에 빗대 현 판세를 분석했다.

“이제 안타 하나 치고 1루에 나간 정도가 정확할 겁니다. 작은 성공일 뿐이죠.”
그는 “지금껏 살면서 지는 싸움은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치밀한 계산과 집중력이 장기다. 싱글 골퍼인 그는 실수가 적고 특히 퍼팅에 강한 스타일이다. 그는 “이제 작전을 걸 타이밍”이라고 했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최강의 팀이다. 울돌목의 물살이 급하다는 것도 이미 안다. 그래서 쉽사리 전장을 옮기기보다는 ‘영상통화료 인하’ 등 위협적인 견제구를 날리며 페이스를 조절하고 있다. 변수는 또 있다. “휴대전화 요금 좀 내리라”는 관중의 야유가 커지고 있는 것. 요금 인하가 이슈가 되면 벌어놓은 돈이 많은 SK텔레콤에 비해 KTF의 부담이 더 크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유선 리그’ 1위인 KT가 원군으로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올 하반기부터는 이동통신에 집전화ㆍ인터넷 등을 묶은 유ㆍ무선 결합상품이 출시된다. 통신시장에도 ‘인터리그(팀들이 리그 간 벽을 넘어 맞붙는 경기)’가 본격화되는 셈이다. 유ㆍ무선을 가르는 칸막이가 사라지면서 시장이 무한경쟁으로 돌입하고 있다. ‘통영회의’는 이처럼 전황이 복잡해지는 와중에 열렸다. 조 사장은 “3G가 대세인 만큼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 페이스대로 갈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그랜드 쇼’가 펼쳐질지, 아니면 ‘깜짝 쇼’로 그칠지는 그가 구사할 작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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