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좌절 여대생 자살싸고 공방/서울시립대,학내 문제로 확대조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32세 만학도 한과목 남기고 재학연한 걸려/“기계적 학칙 적용” 개선요구 학생/“특정인 위해 규정 못바꾼다” 학교
학칙이 우선인가,학칙을 넘어선 향학열이 우선인가.
학칙규정에 매여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게 된 한 만학도 여자 음대생의 죽음을 놓고 서울시립대에서 요즘 학생들과 학교측의 공방전이 한창이다.
공방전은 지난 7월8일 이 대학 음악학과 강모씨(32·여·피아노 전공)가 재학연한 초과로 졸업을 못하게 된 것을 비관,다량의 수면제를 먹은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중 숨지면서 시작됐다.
강씨는 83년 입학후 성적부진으로 1년만에 제적당했다가 88년 재입학,혼자 밤 늦게까지 학교 연습실에 남아 피아노를 치며 만학도의 꿈을 키워왔다.
그러나 내성적인 강씨는 시험때만 되면 지나치게 긴장,시험도중 졸도까지 하는 강박증세로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자꾸만 졸업이 늦춰지다 결국 전공 실기 한과목을 남겨놓은채 지난 1학기를 마지막으로 재학연한 규정에 걸려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애를 태우던 강씨는 실기담당 강사와 함께 『계절학기를 개설,문제의 전공 실기과목을 이수해 졸업할 수 있게 해달라』며 학교측에 탄원서를 내고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서명을 얻어내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러나 학교측은 ▲계절학기 개설을 위해서는 12명 이상의 수강생이 필요하고 ▲2학기때 등록할 수 없는 학생은 계절학기를 신청할 수 없다는 학사지침을 들어 강씨에게 불가통보를 내렸고,결국 졸업이 좌절된 강씨는 심한 우울증세를 보이다 한달여만에 죽음을 택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학생들은 연일 집회를 갖고 학교측의 「경직되고 기계적인 규정 적용」이 한 학생을 죽였다며 학교측을 규탄하고 나섰다.
학생들은 『공부하는 것이 목적인 대학에서 행정편의를 위해 있을뿐인 규정을 이유로 공부를 가로 막은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나흘째 대학본부에서 총장의 사과·학칙개정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 학교측은 『사정이 아무리 딱하다 할지라도 특정인을 위해 규정을 함부로 고칠 수는 없다』며 『이것이 전례가 되면 법규정의 본래 취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비슷한 경우 다른 학생과의 형평에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해 학교측의 결정에 잘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모두에게 보편 타당한」 규칙을 지키려는 학교측과 「인간적 면모를 갖춘 교육의 장」을 주장하는 학생들의 대립은 계속 평행선을 그으며 학칙개정 등의 학내문제로 논쟁이 확대될 전망이다.<이현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